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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의 환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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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육당 최남선이 감동해 마지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있다. 우리 나라의 순교사. 그 『청순, 또 장렬한 성적 희생의 기록』은 세계사의 어느 구석을 찾아보아도 우리의 그것을 따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 천주교는 그런 순교사로부터 시작된다. 최초의 세례교인인 이승훈이 혐오와 위협과 폐쇄를 뿌리치며 포교에 일념하는 이야기는 한 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정하상(다산의 질)과 같은 명문의 자제는 북경교회에 사자를 요청하기 위해 무려 3, 4천리의 먼길을 9번이나 왕래했었다. 그것은 현세에선 아무 보상도 없는 일이었지만, 오로지 믿음과 애덕만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처참한 순교의 길만이 남아 있었다. 모두 참수를 당하고 말았다. 교회의 수난은 그칠 날이 없었다. 신해교난(1791년). 신유사옥(1801년) 등은 그 중에도 뼈아픈 기록들이다.
특히 병인(1866년)수난은 순교사의 처절한 장면을 장식한다. 3년이나 거듭된 이 교난 중에 무려 8천여 명의 순교자를 냈다. 이들의 고난은 한 신앙만의 수호이기보다도 폐쇄된 보수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양반사회·유교지상주의 사회에 대한 자유인의 항거였다.
달리 생각하면, 배교에 대한 한마디의 언질로써 그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은 영화와 안락과 쾌락을 보장받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인간은 쾌락만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결단과 행동으로 증명해 주었다.
로마교황청은 이미 1925년에 79위의 「복자」를 승낙했다. 지난 68년에도 24위의 「복자」가 났다. 복자란 「라틴」어로 「베아투스」(Beatus)라고 한다. 교황은 두 가지의 분명한 기적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의심할 여지없는 순교자이면 그를 「복자」로 시복한다. 복자는 교우들의 공식적인 공경을 받는다.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오다·줄리아」는 일본의 복자(복녀)이다. 그의 순교를 로마교황청은 공식으로 입증한 것이다. 이 연대는 우리의 교난보다 거의 2백년 가까이 앞서 있다. 그러나 그들 순교자중에서도 견인과 의열과 청순을 잃지 않고 가장 고귀한 「휴먼·드라머」를 보여준 자는 「조선의 딸」인 「오다·줄리아」인 것 같다. 새삼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옛날 화랑네의 순교와 근세 천주교종의 순교를 볼진대 정의와 신념을 위해 두려운 것, 아까운 것이 없는 피가 1천년, 2천년을 내리 꿰어서 조선인의 혈족에 괄괄 소리를 지르는 사실』-. 육당은 그것을 『「호산나」조선』이라고 찬미한다.
「줄리아」는 바로 그런 신념과 지조와 강단의 「조선」여인이었다. 그의 묘토 한 줌을 보는 마음은 어딘지 든든하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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