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혼란 부추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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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저소득층 학생에게 정부가 과외비 지원."(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 "수능 응시자의 5%는 만점자가 되도록 출제."(김덕중 전 장관), "부적격 교사는 수업 제한."(이해찬 전 장관), "수능 반올림 피해자 구제."(이상주 전 부총리).

과거 많은 교육부 장관들은 이같이 신중하지 못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설익은 발언→교육 현장 요동.교육관료 반발→장관의 신뢰성.부처 장악력 상실'등의 악순환을 되풀이한 것이다.

신임 윤덕홍(尹德弘)교육부총리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는 공식 업무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혀 혼선을 불러오고 있다. 교육 수장(首長)의 설익은 말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일 尹부총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유보하겠다고 한 발언은 교사들이 시스템에 접속하는 데 필요한 인증서(비밀번호 포함)를 거부하는 움직임에 불을 댕겼다.

지난해 말 4만여명에 불과했던 NEIS 인증 거부 교사가 10일 현재 7만여명이 넘는 것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파악하고 있다.

尹부총리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학부모의 교사평가 등 '교직사회 다면(多面)평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소신과 정책의 혼동=장관 개인의 소신 발언은 교육 관료들의 벽에 부닥쳐 정책화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文전장관은 취임 직후 "돈을 매개로 하지 않은 기여입학은 허용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가 30여분 만에 소신을 접어야 했다.

당시 교육부의 한 관료는 "장관의 평소 소신일 뿐"이라며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김덕중 전 장관도 "수능 응시자 5%에게 만점을 주겠다"고 했으나 결국 불발에 그쳤다.

이상주 전 부총리는 2003학년도 대입에서 수능 반올림으로 탈락한 수험생이 여럿 생겨나자 "피해자를 모두 구제하겠다"고 했다가 바로 '선별 구제'로 입장을 바꿨다.

정창현 중동고교 교장은 "교육부 장관이 현실을 모르고 평소 생각을 얘기할 경우 말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정 집단 반발=장관의 발언이 특정 집단의 집중적인 반발을 사는 바람에 오히려 개혁 프로그램 추진에 발목을 걸기도 한다.

이해찬 전 장관의 '부적격 교사 수업제한''참스승 인증제 도입'발언은 일부 학부모들로부터 공감을 얻었지만 교사 집단의 격렬한 반발을 사면서 시행되지 못했다.

한국교총 등은 이를 계기로 "교사들을 개혁 대상으로 모느냐"고 반발하며 장관 퇴진 운동에 나섰다.

이돈희 전 장관이 "학원 강사보다 못한 교사…"라고 한 것도 정년단축 조치 이후 위축된 교사 집단을 다독이며 개혁을 추진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했다.

◆"장관 흔들기"반론=尹부총리의 설익은 발언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전교조는 "일부 언론과 교육관료들이 장관의 발언을 빌미삼아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전형적인 '개혁 장관 흔들기'"라고 주장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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