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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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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은, 활짝 갠 날씨다. 매연으로 하늘이 거슴츠레 하지만 않다면 나무랄데 없는 가을 날씨이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만도 못한 가을이다.
그 동안 천둥이 없었나, 우박이 없었나, 변덕이라기엔 너무 이기적이었다. 이 통에 벼의 감수도 전국적으로 대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변이란 가끔 있다.「시칠랴」도나 호주의「멜버른」에는 가끔「혈우」, 곧 황적색의 비가 내린다.
「헝가리」에서는 또 5월에 때아닌 황금색 비가 내릴 때가 있다 .이를「마리」의 비라고 한다.
그러나「혈우」나「마리」의 비는 사실은 농사에는 고마운 비다. 그것들은 살충의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박이다. 1788년7월13일「프랑스」중부에는 우박이 쏟아졌다. 농작이 결딴난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C·E·탈만」 이라는 사가는 우박이 「프랑스」혁명을 재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박을 예방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옛날부터 강구되었던. l900년께 「이탈리아」에서는 1천문의 대비를 마련하고 일제히 쏘아댔다. 물론 효과가 있을 턱이 없다.「프랑스」에서도 19세기초에 피뇌계를 닮은 장간을 세워봤다.
그러나 농사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기온의 급격한 변화나 한랭 전선이다. 사람도 기온이 급강하하면 피부의 혈관이 수축되어 혈압이 높아지고「알레르기」성 질환이나「류머티즘」·신경통 등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 유아·노인·피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후에 약한 것은 사람보다도 벼가 더 심하다. 기온이 몇 도만 떨어져도 벼농사에는 장애가 온다.
당초에 동양과 서양을 쌀밥과 빵의 문명권으로 갈라놓은 것은 기후 탓이었다. 처음부터 빵을 먹고 싶어서 대·소맥를 서양사람들이 심은 것은 아니다. 그것 이외에는 재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같은 쌀 벼라해도 열대성과 온대성과는 다르다. 가령 인도의 쌀은 우리네 쌀처럼 끈적이는 맛이 없고 바삭바삭하다. 인도 사람들이 음식을 손가락으로 먹는 것도 인도 쌀의 특수성에서 나은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도 흉 볼 수 있는 풍습은 아니라고 봐야한다.
그 동안의 날씨 이변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통일벼」이다. 경기 지방에서는 90%까지, 전국적으로는 평균20%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초에 통일벼란 남방형 벼를 개량한 것이었다. 아무리 개량했다 하여도 온상 재배의 단계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은 실험단계에 머물렀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뭣보다도 전천후 농작의 연구가 더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차트」상의 증산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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