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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탈 물질 문명의 처방… 석학「장·피아제」와의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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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홀=선생은 「프로이트」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의 변혁아라고 불린다. 「프로이트」가 인격에 대한 종래의 관념을 뒤엎었다면 선생은 지능에 대한 관점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의 사상은 전문가들도 설명하기 어려운 독톡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
피아제=그 점은 나도 동감이다. 원인은 내가 생물학을 출발점으로 해서 지능을 설명한데 반해 다른 사람들은 「스키너」나 「해트」의 경험적 고찰을 기초로 하는데 있다.
나는 인식론적인 문제를 다룰 때도 실험이나 정식화를 매우 중요시한다. 미국인들은 이런걸 가지고 「경험론적」이라고 말하는 모양이지만….
홀=심리학은 원래 철학의 한 부분이었다. 한데 선생은 이러한 위치를 바꿔놓은 셈이 아닌가. 이를테면 인식론을 철학의 기초로 삼고 심리학으로 철학의 모든 분야를 덮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아제=내가 철학 속에서 인식론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식론은 지식의 본질 및 기원에 대한 연구이므로 모든 과학의 기초가 되는 게 아닌가.
홀=생물학과 연체동물의 연구에서 인식론으로 연구의 대상을 바꾸게된 경위는….
피아제=연체 동물 연구를 시작한 것은 10살 때였다. 조개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쓴 것은 15살 때였으니까. 한데 바로 이 무렵에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 문제의 대부분이 인식론에 관한 것이고, 그리고 인식에 관한 문제의 대부분은 생물학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홀연 내 머리를 스쳤다.
간단히 말해서 인식론이란 주체가 객체를 인식하는 경위 및 방법에 대한 학문이 아닌가. 이것을 생물학에서는 약간 용어를 바꾸어 생물의 환경에 대한 순응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홀=자서전에서 『나는 자연 과학의 소양 때문에 철학의 악마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 쓴 것은 바로 이 이야기를 두고 한 말인가.
피아제=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내가 말한 철학의 악마란 아무런 실험도 하지 않고 서재에만 앉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방법을 가리 킨 것이다.
자신의 실험결과를 종합하기 위해서 서재에서의 사색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필요하다. 철학적 지혜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자연 과학적 관찰이란 아무리 양이 많아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철학의 악마가 실험 단계를 무시하는데 있다.
홀=선생은 학문의 현실성 내지 현실에서의 이용 가능성을 무척 중요시하는데.
피아제=그렇다. 내가 처음 심리학에 몰두한 것은 어머니의 정신 상태가 몹시 나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학문이 현실적 유용성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에서는 내가 문학 작품까지도 현실성이란 자(척)를 가지고 잰다고 말하는데 전혀 근거 없는 소리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내 자신 철학적인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홀=지능에 관한 연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피아제=나는 지능 「테스트」 그 자체보다도 어린이들이 오답을 쓰게 되는 그 배경을 중요시한다. 현재 내가 내세운 이론이 맞는가의 여부를 「제네바」와 「몬트리올」의 심리학 연구소에서 어린이를 상대로 직접 실험 중이다. 두 군데서 하고 있는 실험은 모두 개인 「테스트」다. 단체 「테스트」는 자칫 그릇된 결론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홀=선생의 「보존의 원리」를 좀 자세히 설명해 주겠는가.
피아제=이야기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이러이러한 일들을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 가운데는 전혀 그렇지 못한 사실도 많다는 얘기다. 가장 좋은 예가 양에 대한 관념이다. 동전 10개를 1cm간격으로 늘어놓았을 때와 9개를 1·5cm간격으로 늘어놓았을 때 어린아이들은 우선 9개 쪽이 더 많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홀=유아가 「자기 중심적」이라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피아제=내가 한말 가운데서도 가장 오해가 많은 말이다. 그것은 인식론의 감정적·도덕적인 의미로 쓰여진 말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자기의 견해, 자기의 판단이 유일한 기준이며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천동설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홀=어린이들의 도덕관은 어른들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생겨난다고 썼던데…
피아제=도덕 판단은 2기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제1기는 어른들의 명령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시기다.
그러나 제2기가 되면 도덕 판단은 전혀 독립해서 자기들끼리 새로운 도덕관을 형성해 간다. 따라서 어른들이 정말로 어린이에게 협력을 구하면 이들도 적극 협력하게 되며 세대차에 의한 의견 대립도 해소되는 것이다.
홀=만약 선생이 권력을 잡는다면 학교의 교육 과정을 어떻게 고치겠는가.
피아제=현재의 학교는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이를테면 맞춤법이 그것이다.
가장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실험적 방법에 의한 교육이다. 즉 자기 자신이 세운 가설을 스스로 검증하게 하는 방법이야말로 학교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학교 선생이 학생들 보는 앞에서 실험해 보이면 될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나 천만의 말씀이다.
홀=경솔한 심리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피아제=실험에 의해서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 가설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뭣을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따위의 가설을 무책임하게 발표, 사람들이 이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외지서>

<둘째 대담자「장·피아제」>
「장·피아제」는 1896년 「스위스」태생. 「뉴·샤텔」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파리」대에서는 심리학으로 전향, 이른바 생물학적 인식론을 개척했다. 그는 특히 어린이들의 개념 발달과정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분석, 교육학과 심리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용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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