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박시영 경남 산청군 생비량 국민학교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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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 통일벼가 아무래도 안 되겠는걸. 병인지 충인지 어째서 그런지 모르겠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그이의 근심스런 얼굴을 보며 나는 괜히 무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볍씨를 고를 적에 「만경」과 「밀성」 그리고 「아끼바리」 세 가지만 한다는 것을 통일벼를 심자고 내가 우긴 것이다.
기적의 볍씨 통일벼의 시험 성적이 공식 발표된 후 나는 믿었던 것이다. 농촌 소득 증대에 이바지할 통일벼의 기적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권장을 국민으로서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애국적인 일이라는 나의 발언에 조그만 농토의 반 이상을 통일벼를 심은 것이 성적이 좋지 못하다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화명충 외엔 다른 어떤 벼 품종보다 병해에 강하다는 통일벼가 일반 벼보다 병충해에 약하다니, 그리고 우리 나라 풍토에 적당하지 못하다느니 한다는 것은 시행착오도 언어도단이다.
당국의 권장에 당국을 믿고 심은 것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수란다. 우리 집도 예외 없이 50%이상의 감수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예년보다 7섬을 더 수확하면 장독대도 하나 만들고, 나무 아궁이의 부엌을 연탄 부엌으로 고치고, 조리대를 개량하고, 그리고 남은 돈을 내년에 중학에 입학하는 큰애의 입학금으로 쓰겠다는 나 혼자만의 꿈이 왈칵 무너져 버린 것이다. 더구나 새마을 운동과 함께 토담을 헐고 「블록」담을 쌓고 지붕 개량에 안간힘을 써온 우리 집 경제사정이라 실망은 더 큰 것이다.
아 모두가 당국의 잘못만은 아닌 나의 시행착오적인 발언 때문이라 생각하면 자업자득인 셈이요, 가꾸는 일에 소홀해서 그랬다면 우리 집안 식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어쨌든 어느 누구 한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좀 더 치밀하지 못한 너와 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당국의 시행착오적인 이런 일이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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