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석 수석 대표 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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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오늘 드디어 수도 서울에서 남북 적십자 회담 제2차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뜻깊은 이 시간, 본인은 먼저 평양으로부터 먼길을 오신 대표 여러분에게 대한 적십자사와 우리 대표단의 이름으로 따뜻한 환영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도 배달되지 않는 단절된 곳이 단 한군데 있었다면 그곳이 바로 이 나라 남북 사이의 높은 장벽 너머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8월29일, 비록 주소가 적히지 않고 우표가 붙지는 않았으나 수많은 애절한 사연을 가지고 높은 장벽의 문을 넘어 평양에 갔었고, 여러분들도 또한 오늘 주소와 우표가 없는 수많은 그곳 겨레들의 사연을 안고 이곳에 오셨습니다.
수천만의 동포들은 바로 그 사연들을 27년 동안 듣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 동포들의 열망과 성원을 우리 대표들은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개최된 제1차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우리 쌍방 대표단이 기록한 새로운 민족사의 제1장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새져져 있을 것입니다.
『쌍방 대표단은 과거 남북간에 존재하였던 불신과 긴장 상태를 신뢰와 화해의 분위기로 이끌어감에 크게 기여하였고, 쌍방 대표단은 적십자 본연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였으며, 그리고 쌍방 대표단은 상호 이해의 마음가짐으로 제반 문제를 성실히 토의하여 앞으로의 회담 추진을 위한 기초를 훌륭하게 이룩하였다』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 민족 누구에게 물어도 조국 통일이 일각이라도 앞당겨 성취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27년이라는 단절 상태가 빚어낸 여러 가지 난 문제가 현실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칫 회담의 분위기를 그르칠지도 모를 비약된 논의는 자중자제 되어야 하며, 때로는 회담을 에워싼 비생산적 주변 요소들에 대하여서는 일부러 외면해야하는 배려마저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우리들의 상호 신뢰와 성실 노력으로 이 적십자 회담의 궤도가 순탄하게 이어져 간다면 언젠가는 다음 단계의 역사적 과업의 궤도로 연결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첫째로, 우리 쌍방이 추진하는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 것은 사업 대상인 이산 가족과 친척들의 「자유 의사」의 보위입니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나 당사자 개개인의 자유 의사에 위반되거나 그들의 안전을 해치는 처사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로,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추진되는 이산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모든 사업들은 반드시 쌍방 적십자사의 주관과 책임 하에 『헌신적인 적십자 봉사 정신』에 입각하여 수행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각 의제에 예시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국제 적십자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사업 방식을 기반으로 하여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 세 가지의 기본 원칙이 앞으로의 실질적 토의에 적용될 때 우리의 사업은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슬기로운 민족, 보람찬 조국의 앞날에는 희망이 넘칩니다. 우리는 다 함께 1천만 이산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성스러운 사업의 성실한 길잡이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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