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 장성택, 김일성이 김경희와 교제 반대해 대학서 쫓겨나기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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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실각하고 측근 2명이 공개처형 당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장성택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성택은 북한 국방위원장인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국방위원장 김정은의 다음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실각 되기 전까지 북한 정권의 사실상 2인자로 군림해 왔다.

장성택은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의 곁을 지키며 김정은을 도와 장례를 함께 치렀으며, 이후 김정은 체제의 핵심 후견세력으로 그 힘이 더욱 공고해졌다. 그는 '3전 4기'의 인물로도 유명하다.

1946년 2월 강원도 천내군에서 태어난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한 뒤, 1972년 동급생인 김경희와 결혼해 김일성의 사위가 됐다. 결혼 전 김일성이 교제를 반대해 장성택을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낸 적이 있다고 한다.

김경희와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한 장성택은 평양시 당 지도원부터 출발했다. 이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외교부 담당 과장 당시에 ‘충성의 외화벌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 돈으로 77년 보통강 구역에 김정일의 피로를 회복시켜준다는 ‘피로회복관’을 지어 김정일에게 바치기도 했다.

이후 장성택은 세계 각국에 있는 대사관들에 외화를 벌어오라고 지시해 이때부터 외교관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마약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성택은 78년 동평양에 있는 외교부 초대소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외교부 간부들 중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열다 김정일의 눈 밖에나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권력남용 혐의 등으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장성택은 2006년 조선노동당 근로단체·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했으며 2007년에는 당 중앙행정부장으로 승진해 다시 일선에 나섰다.

2010년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한 장성택은 이때부터 북한의 ‘공식 2인자’ 겸 ‘실질적 권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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