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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제26화>내가 아는 이 박사 경무대사계 여록(177)|한갑수<제자 윤석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감록과 3·15>
해공 신익희 선생이 호남선 열차 안에서 서거하신 지 얼마 뒤의 일이다.
하루는 경남 창령에 사는 최상용이라는 사람이 국회로 나를 찾아와 이 박사와 만송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최씨는 두 분을 만나기 전에 우선 만송의 비서실장인 나를 보자고 졸라 만나자는 이유를 물었더니 정감록에 쓰여진 시국론을 펴자는 것이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이후도 몇 번이나 찾아온 것을 그때마다 거절, 돌려보내곤 했는데 나중엔 주위에서 최씨가 자유당의 열성 당원으로 시골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니 한 번 만나주라고 자꾸 권유하여 마지못해 만났다.
최씨는 나를 보자 대뜸 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정감록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선거운동에 큰 효과를 보았다면서 『지미견다』라는 네 글자를 종이에 썼다.
그는 못지(지)·쌀미(미)·개견(견)·많을다(다)의 넉 자가 민주당의 선거구호인 『못살겠다』와 발음이 비슷하다면서 정감록에 지미견다로 세상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곧
한양도리발
상남신죽다
라는 말이 있어 자유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정감록이 예견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한양도리발이라는 문구가 『서울에 복숭아·배꽃이 만발하다』는 뜻이 아니고 목자가 든 두 이씨(이 박사·이기붕 의장)가 서울에서 승리한다는 말이요, 상남신죽다는 상남(호남지방)에 신죽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호남에서 신씨가 불행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라는 별난 풀이를 하면서 『얼마나 잘 맞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 3·15선거에 임박해서 최씨가 다시 나를 찾아와 이 박사와 이 의장에게 전하는 족자 2개를 놓고 갔다.
전면에는 56년 선거를 예언했다는
한양도리발
상남신죽다
의 문구를 쓰고 후면에는 3·15선거를 예언하는 문구를 쓴 것인데 이 박사와 이 의장에게 보내는 것이 각기 내용이 달랐다.
이 박사에게 보낸 것은 지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 의장에게 보낸 것은 후면에
청군막한난승의
인상상년부풍언
라고 쓴 것이었다.
이 시구의 요지는 『그대여 옷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라. 춘추시대의 인상여라는 재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약한 몸이지만 40년간이나 재상 노릇을 했다』는 것으로 만송의 건강이 다소 나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만송도 이 액자를 받고 아주 기분이 좋아 최씨에게 두둑한 금일봉을 주기까지 했다.
아닌게 아니라 만송의 건강은 당시 세상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다.
내가 57년 처음으로 만송에게 갔을 때만 해도 그는 삼각지에서 약수동 「로터리」까지의 길을 혼자 걸어갈 수 있을 정도여서 그다지 비관적은 아니었다.
만송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적이 드문 삼각지∼약수동 사이의 남산 뒷길을 자주 걸었으며 나중에는 비원 안을 1시간 정도 산책하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3·15선거에 임박해서는 신경 쓰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건강이 악화돼가 서대문 자택의 50평 남짓한 잔디밭을 부축 받으면서 간신히 15분 정도 걸을 수 있었다.
자유당 말기에 가서 만송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사람 만나는 것을 가장 꺼렸으며 되도록 나더러 대신 만나 처리하라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 으례 『주무십니다』 『외출중입니다』 『「링겔」주사를 맞고 계십니다』 등으로 적당히 구실을 붙여 돌려보내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대신 만난 후에 보고만 간략히 했다.
하루는 이용범 의원이 서대문을 찾아왔는데 안 계시다고 따돌렸더니 계속 매일 같이 오다시피 했다.
약 한 달간을 출입해도 못 만나게 되니까 이 의원이 하루는 큰맘을 먹고 문밖에서 저지하는 순경들을 뿌리치고 들어와 응접실에 앉아 있는 만송과 마주치게 됐다. 만송은 뜻밖에 마주치게 되니 퍽 당황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나를 찾는 만송의 고함소리가 들리기에 응접실로 들어가니 만송은 나더러 『누가 이 의원이 나를 찾아왔는데 따돌렸느냐. 내가 항상 딴 사람은 못 만나도 이 의원만큼은 꼭 만난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내 뜻을 그렇게도 모르느냐』고 거짓꾸지람을 했다.
만송의 이 호통에 이 의원은 감격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러면 그렇지 의장님이 저를 그렇게 하실 리 있읍니까. 제가 대통령이 될라 캅니까, 국회의장이 될라 캅니까, 아니면 장관 나부랑이가 될라 캅니까, 정말 아무 욕심이 없습니다. 의장님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 죽어도 한이 없읍니다』라고 엉엉 울면서 말했다.
이같이 건강으로 번민을 하던 만송이 최씨 같은 사람의 정감록 풀이에 귀가 솔깃해 했고 이 박사도 경무대서 만송과 최씨의 족자를 놓고 오래간만에 유쾌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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