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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장 안 찍으면 … 출판기념회에 등골 휘는 지역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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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 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역 유력 인사들을 참석시켜 선거 전 세몰이를 하고, 또 책을 팔아 합법적으로 선거자금 등을 마련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지역 중견·중소기업인들로부터 “이곳저곳 출판기념회에 내밀 봉투 마련하느라 등골이 빠진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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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의 경우 지난달 1일 송영길 인천시장과 12일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잇따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인천의 중소제조업체 대표 김모(43)씨는 “두 행사에 모두 참석해 각각 봉투에 20만원을 담아 내고 책 두 권씩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둘 다 내년 지방선거의 유력한 후보”라며 “단체장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인으로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다음 달엔 또 인천시장으로 나올 것이라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잡혀 있다”며 “구청장 후보 행사에서도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니 앞으로도 여러 차례 더 나가 봉투를 내밀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엔 인천 말고도 전국 각지에서 자치단체장과 교육수장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대구시장 선거에 나갈 것으로 알려진 주성영 전 새누리당 의원(11일), 재선을 노리는 민병희 강원교육감(16일)과 안희정 충남지사(23일), 강원 삼척시장 출마가 유력한 박상수 강원도의회 의장(30일) 등이 출판기념회를 했다.

이달엔 충북지사 출마를 고려 중인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4일), 연임에 도전하는 김연식 강원 태백시장(10일), 충남지사 출마설이 돌고 있는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10일)과 성무용(14일) 충남 천안시장의 행사가 줄줄이 잡혀 있다.

 지난달 열린 행사에는 적게는 1000명, 많게는 5000명까지 참석했다. 대부분 지역 기업인이다. 혹시 눈 밖에 나 불이익을 당하거나 규제를 받지는 않을까, 얼굴을 익혀두면 공사 수주 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이들은 권당 5만~20만원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3000명이 평균 10만원을 내고 간다면 3억원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자치단체장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판·행사 비용을 빼고도 억대를 남긴다. ‘책을 팔아 번 돈’이어서 온전히 개인 수입이다. 이 돈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기부자를 밝힐 필요도 없고 모금액 제한도 없다. 자치단체장들이 선거를 앞두고 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 등으로 우후죽순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요즘 지역 기업 대표들 책상에는 자치단체장들이 보낸 출판기념회 초대장이 쌓여 있다. 익명을 원한 대전의 중견건설업체 대표는 “최근 한 달 새 출판기념회 초청장만 10개 넘게 받았다”며 “찍힐까봐 안 갈 수는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초청장이 올 것이어서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현행법상 선거 90일 전인 내년 3월 6일까지는 출마자들이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어 앞으로도 행사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지역기업인들은 4년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날아오는 초청장을 ‘고지서’라고 표현한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직접 내미는 봉투뿐 아니라 행사장에 보내는 화환값 또한 만만치 않다. 지방 중소건설업체 대표들은 교육수장 출판기념회까지 찾아다닌다. 안면을 터 놓으면 학교 강당·체육관처럼 수의계약이 가능한 소규모 공사를 따낼 때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치단체장 출판기념회에 나오는 책은 대부분 본인의 치적을 담은 것이다. 단체장들은 공식적으론 “직접 쓴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 자치단체장 측근으로 일했던 이모(47)씨는 “절반쯤은 대필 전문작가가 쓴 것”이라며 “비서실이나 공보실에서 성과물을 모아 넘겨주면 일주일 만에도 책이 나온다”고 전했다. 대필료는 작가에 따라 1000만~3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요즘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수요가 몰려 유명 대필작가 몸값이 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송재봉(45) 충북NGO센터장은 “서점엔 깔리지도 않고 출판기념회에만 나오는 서적은 사실상 정치자금 모금용으로 봐야 한다”며 “선거법을 바꿔 이런 책으로 벌어들이는 출판기념회 수입은 영수증을 발급하고 기부자와 기부금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권삼·신진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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