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사라지지 않을 진짜 디자인의 알파와 오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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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26면

저자: 박현택 출판사:컬처그라퍼 가격: 1만5000원

“디자인이 아니면 사라져라(Design or resign)”는 말이 있다. 기실 예로부터 쓰임새를 고려해 정교히 ‘디자인’되지 않은 물건은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들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렇다. ‘그 옛날에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싶게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고안된 물건들만이 가치를 인정받고 오래오래 보존되고 있다.

『오래된 디자인』

‘21세기는 문화중심시대’라며 전통문화를 되살려 우리의 고유성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끌어낼 디자인의 중요성을 외치는 오늘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낼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도자기 모양의 드레스나 나전칠기로 장식된 게임기일까?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 디자이너로 30년간 일해 온 저자가 우리 유물과 해외 명품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며 ‘한국적인 디자인’을 위한 방법론을 제안했다. 결코 단순한 형태 복제나 소재주의적 접근으로는 전통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 유물이 어떤 정신적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해 왔는가라는 문화적인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야 삶과 결부된 진짜 디자인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적’이라는 말은 정의하기 어렵다. 누구는 조선의 소박하고 서민적인 매력이, 누구는 고려의 화려함과 귀족미야말로 한국적 아름다움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그런 민족성을 앞세운 기준을 넘어 과거의 삶에 결부된 가치를 동시대적인 기능과 미학으로 살리는 것을 정체성 있는 디자인으로 봤다.

조선 백자를 복제한 원피스나 고려 청자를 복제한 드레스가 한결같이 우리 고유성을 빛내주지 못하는 것은 형상을 재현했을 뿐 거기에 담긴 익살과 유희를 표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화가 이중섭이 한국적 향토색을 구현한 화가로 평가받는 것은 고려 청자주전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 ‘애들과 물고기와 게’에서 보듯 그가 형상 이면의 정신적 가치를 유물과 공유했기 때문이다.

전통의 상품화가 형상 복제를 넘어선 좋은 예는 루브르 박물관의 니케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상 속 승리의 여신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의 조각으로 형상화되고, 전쟁무기 미사일을 거쳐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낳기도 했다니 ‘승리’라는 상징적 가치가 신화에서 예술로, 다시 철저한 상업화의 대상으로 재탄생되며 무한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의 ‘V’와 니케의 날개를 은유한다는 나이키 로고는 흡사 브랑쿠시의 추상조각을 연상시키며, 형상이 아닌 가치의 재현이란 무엇인가를 웅변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사실 해외의 명품 브랜드들은 그 자체가 유물이요 문화재다. 전통을 단절하지 않고 당대의 가치를 더해 끊임없이 혁신하며 브랜드를 계승해온 덕이다. 우리 유물이 문화상품으로 개발되려면 명품 브랜드의 역사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다. 가방업계의 지존 루이뷔통의 역사는 전통이 빛을 보려면 혁신과 조화를 이루면서 ‘소품종 소량생산, 철저한 품질유지, 소비자 심리 반영’이라는 명품의 원칙을 유지해야 함을 역설한다.

프라다나 버버리는 또 어떤가. 알고 보면 군용물품에서 발전된 것이 이들 명품인데,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염색 야전 점퍼나 군용천막으로 만든 전대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삶의 가치가 깃든 물건을 홀대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명품 브랜드 하나 갖지 못한 것도 그래서 아닐까.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을 ‘한국적 디자인’을 가지려면 물건의 모양에 앞서 가치부터 디자인해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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