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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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노 교수는 몇 년을 걸려 은행적금을 탔다. 50만원 짜리 2건. 이 돈은 정작 「몇년」이 아니라 평생이 걸린 셈이다. 생산이라고는 그것뿐이니까.
그는 이제 이 돈을 가지고 합일이 많았다. 당장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딸의 혼사가 다가오고 있다. 교수는 어느 회사의 경리과에 근무하는 제자를 찾아갔다.
그 「평생의 재산」을 맡기고. 이자를 받아 그것으로 계를 하나 꾸밀 생각이었다. 딸의 혼수도 장만하고 또 노후엔 용돈이라도 보탬이 되겠지 하는. 순박한 「렝티에르」(rentier)가 되는 애틋한 꿈(?)이다. 자, 이젠 그 딸의 혼사는 『3년 거치 5년 상환』으로도 될지 말지 이다. 그 사이에 딸은 30도 넘은 과년이 될 것이다.
이런 삽화도 있다. 한 고급관리는 상당한 돈을 어느 회사에 사채로 돌려놓았다. 무론 그는 배후에 머무르고 부인의 이름으로 채권자가 되었다. 그 기업체와는 친분과 신의의 관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그 「사채」에만 있지 앉다. 부인의 이름이 혹시라도 추적되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황급히 그 기업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금을 백지로 포기하는 셈칠 테니 선처 바라오』.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기다.
서울 교외의 한 제유공장 여공들은 이른바 『줄줄이 계』를 하고 있었다. 계를 모아 그 돈을 공장경영에 넣고, 또 그 이자를 받아 다시 계를 이어가는 식으로-.
그 여공들은 상경소녀 아니면, 영세민의 가계를 꾸려 가는 생활역군들이다. 이들의 애절한 꿈은 물거품이 되는가. 계는 어느 경우나 단순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신경조직과도 같아서, 줄줄이 얽히고 설켜 있다. 자, 그 전자「코일」과 같은 조직들이 마비되는 사회적 혼란은 어찌할까. 더구나 계는 인간적인 유대 위에서 인정의 매개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제 그「그래스·루트」(풀뿌리)같은 인간조직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한쪽에선, 물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위장사상의 경우이다. 가령 이런 예화도 있을 수 있다. 자금의 회수는 한푼도 없었으면서 다만 장부기장 상으로 사채를 위장한 경우이다. 과세를 기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금년엔 병배세의 조정으로 그런 소지는 상당히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없으란 법은 없다. 자, 이제 그 기업주는 마음놓고 돈을 뒤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뼈 속에서 살이 찐 부실기업주들이 기지개를 켜게된 경우와 다름없다.
시정의 희비는 이처럼 엇갈리고 있다. 이제 8·3조치의 성패는 그 문제의 흑백을 가리는데 있다. 이점에서 선명치 못하면 서민의 머리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시민의 어깨 위에 디디고 선 경기부양은 의미가 없다. 부디 이번 조치의 성공과 좋은 결과만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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