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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과 전통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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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화재 보호, 고분 발굴, 고원 복원이니 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는 요즈음, 나는 무형문화재에 속하는 민속 예술인 남사당놀이에 매료당해 있는 중이다. 아무리해도 나는 상류층에 흐르던 가무나 담담한 궁중무보다는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서민의 기수에 훨씬 애착을 느끼게 된다.
남사당은 이조의 유랑예인 집단이다. 그 당시 가장 천대받던 밑바닥 인생의 「집시」와 같은 무리였다. 천민 계급이었던 그들은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 식으로 지배층 (양반)에 대한 저항을 몸짓과 꽹과리·날나리의 소릿짓을 통하여 몸부림쳤고 그래서 서민과 밀착된 호응을 받았다. 그들은 한낱 잡초와 같이 밟히면 밟힐수록 더욱 억세게 자라갔던 것이다.
그들의 사발 돌리기 (버나)와 줄타기 (어름)는 서양의 「서커스」와는 질이 다른, 어릿광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풍물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풍자의 멋이 깃들여있다. 가면극 (덧뵈기) , 꼭두각시놀음 (덜미)도 풍자와 해학이 넘쳐 지배층과 권력을 비만하고 야유하는 즉흥이 듬뿍 담겨 유쾌하기만 하다.
남사당놀이의 여섯 마당 중 원형의 땅재주 (살판)는 물구나무서기 등의 온갖 체기로 몸짓의 확대된 표현 속에서 죽을 판 살 판 하는 절박감에 젖게 한다. 가장 푸짐하고 화려한 농악 (풍물)의 무등과 열두 발 상무는 어느 나라 유례에도 비할 수 없는 흥겨움과 장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유형의 문화재보다도 민족 개개인의 저변에 깃들여 있는 열과 감정의 표백.
자연 발생적이라기 보다는 너무도 유구한 역사 동안 민중과 더불어 살아 온 정서요 생명력이다. 이 가락이야말로 그 어떤 상류 계급의 강압적이고 강요적인 힘으로 이룩된 값진 문화재보다도 한층 민족적인 것이고 또 민족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므로 문화재의 보호 정신을 범국민적으로 번지게 하려면 이 민족의 가무 등 부흥시키고 다듬어 자랑과 긍지로써 전통 문화의 전승을 꾀해야 할 것이 자명하다.
요즈음 남사당에 반해 있으면서 나는 울적할 때면 『탈춤을 추고 싶다』고 남몰래 맘속에 품곤 한다.
그리고 누가 취미가 뭐냐고 할 때, 모든 의무와 제한에서 떠난 남사당이 되고 싶은 기분을 짐짓 누르며 집에 박혀 글이나 읽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짜 남사당이었던 분들께 호통을 맞지나 않을는지….
김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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