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정권력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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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0일부터 속개 중에 있는 국회 본회의에서의 질의과정을 통해 새삼스럽게 헌법창설권력논의가 등장, 주목을 끌고있다.
지난 8일 윤길중 의원은 이후낙 부장의 평양방문이 「켈젠」의 법단계설 이론에 따른 『헌법 창설 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바 있었던 것인데 21일 신직수 법무는 제헌권력의 창설 운운은 우리 헌법이 시한적인 서독연방 공화국의 기본법과는 달리 그 제1조 및 2조에서 한반도 전체를 단일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타당치 않다고 답변하였다.
헌법창설권력이란 강학상 헌법제정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헌법제정권력은 헌법을 만드는 권능이기 때문에 시원적 제헌권이라고도 하며, 「시에예스」에 의하여 처음으로 주장되었고 「카를·슈미트」에 의하여 체계화된 것이다.「카를·슈미트」는 헌법제정권력→헌법→헌법룰→『헌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권력』등의 위계질서를 말하고 있다.
헌법제정권력은 위법에 상위하는 권력이기 때문에 정치와 법, 광란하는 사회적 제력과 평정한 법적 절차, 명백함·혁명적 소란과 확신 있는 체제질서의 교차점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법 제정 권력은 비상시, 즉 혁명시에만 발동하는 권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정된 헌법 질서 하에서 함부로 헌법제정권력의 창설을 운운한다는 것은 혁명의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용인될 수 없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서독의 기본법과 동독의 헌법은 처음부터 통일 독일의 헌법제정권력에 관한 명문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서독 기본법은 전문에서 독일 통일에의 성취를 의무화하고 제23조에서 『이 헌법은 서독의 영역에만 효력을 가지고 독일의 타 부분에는 그 가맹에 따라서만 효력을 발생한다』고 하여 동독을 병합 통일한 후에도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는 융통성을 두고있다.
반면 제1백46조에서는 『본 기본법은 독일 국민이 자유로운 결정에 의하여 의결한 헌법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이 기본법 자체가 잠정헌법임을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68년에 새로 제정된 동독헌법은 제8조에서 『동독과 동독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근거 하에 재통합될 때까지 양독일 국가의 점진적인 접근에 노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양독은 서로가 분단된 현실 위에서 출발하고 통독헌법의 창설권력을 국민들에게 유보하고 있는 것은 국민주권의 원리상 당연한 배려라 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 헌법이나 북한의 소위 「헌법」은 다 같이 완전 국가임을 명시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까지 효력이 미친다 하고 통일은 이 헌법에 의하여야 하며 통일후의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써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북한의 소위 헌법은 이에서 일보 더 나아가, 수도는 서울이라고 못박고 남한에 있는 국민들도 그들의 이 헌법제정회의에 투표를 했다고 허위선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해방 당시의 한국인은 정부가 「북한」의 국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 하에서는 새로운 통일 헌법의 제정이란 양 헌법을 다같이 폐기한다는 전제가 아니면 법리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창설권력은 기존 헌법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전국민이 이를 원하고 국민이 가지고 있는 헌법제정권력을 발동하면 새로운 헌법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국민주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헌법개정 국민투표에 의하여 이 헌법의 효력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 다음에야 제헌법 권력의 발동을 논하는 것이 평화적인 이론전개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지에서 제헌권력의 창설이론이 아니라도 7·4공동성명 자체를 위헌 불법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7·4공동성명은 대통령의 민족통일과 국제평화 유지를 위한 직무행위 이기에 합헌이요 합법이라고 하겠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인도적인 민족의 재결합은 위정자의 헌법상의 의무인 것이다.
국제평화의 유지는 헌법전문과 제4조 5조에 따라 국제평화를 유지해야할 세계의 근본규범에 구속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전문과 헌법 제4조 헌법 제5조의 규정에서 보아 평화적 통일은 이 헌법의 범위 내에서도 합헌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야는 통일을 위하여 현행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하고 통일 헌법의 제정기운이 성숙한 뒤에 통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이론을 전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여 혼란을 야기하는 성급한 논의는 삼감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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