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고 철근 삐죽 … 그 속에 갇힌 동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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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7일 서울대공원 남미관 사육장에서 철근만 남은 울타리 앞을 라마가 거닐고 있다(사진 왼쪽).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된 동양관의 벽. 일부에선 곰팡이가 핀 곳도 보였다.

27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양관. 높이 15m 천장에서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이날 오전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이었다. 관람객 통로 곳곳은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고여 흥건했다. 열대 우림을 그려놓은 건물 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회색 시멘트가 드러났다. 일부 곰팡이가 핀 곳도 보였다. 지은 지 30년이 된 동양관 천장은 플라스틱 조각을 돔 모양에 덧대 만들었지만 낡아 틈이 벌어지면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계대로라면 건물 내부로 햇빛이 들어와야 하지만 뿌옇게 낡아버린 플라스틱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983년 준공된 동양관은 서울대공원 건물의 노후 실태를 잘 보여준다. 사육사 심모(52)씨가 호랑이에게 물린 여우 우리도 29년 된 건물이었다. 대공원은 시베리아 호랑이 두 마리를 방사하면서 1700만원을 들여 여우 우리를 개조했지만 출입문이 낮아 호랑이가 관람 통로로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서울대공원 곰 우리 옆에 덧대 놓은 옹벽이 옆으로 쓰러지기 직전이다.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시설은 더 열악했다. 대공원 끝에 위치한 곰 우리 시멘트 바닥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철창을 고정하는 시멘트 밑바닥 중 일부는 부식돼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서울대공원이 지난달 10일 내놓은 ‘시설물별 개선 대책’에 따르면 곰 우리 건물 옥상 3곳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방사장 4곳은 콘크리트가 파손됐다. 대공원도 “시설물 노후로 인해 동물 탈출과 관람객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시설공사를 통해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2015년으로 공사를 미뤘다.

 동물들의 건강도 위태로워 보였다. 몸무게 200㎏ 정도인 아메리카검정곰에게 30년 전 지어진 5평 규모의 내실은 무척 좁아 보였다. 곰 우리 옆에 덧대놓은 옹벽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한 사육사는 “동물원 곰들은 먹이가 풍부해 겨울잠도 자지 않는다”며 “30년 된 건물에서 산다고 생각해 보면 곰들이 얼마나 불편한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 고산지대에서 온 라마의 방사장은 이날 돌아본 곳 중 가장 열악했다. 울타리 중 일부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앙상한 철근으로만 지탱되고 있었다. 암컷 라마 한 마리는 철근에 묻은 녹물을 빨아먹기도 했다. 대공원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동물들의 건강”이라며 “방사된 돌고래 제돌이가 생활하던 것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에서 공연을 하던 제돌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시로 7억6000만원의 비용을 들여 바다에 방사됐다.

 준공 30년을 맞았다는 남미관 내부도 동양관과 마찬가지로 천장 유리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서울대공원도 할 말은 있다. 대공원의 재정자립도는 50% 수준이다. 예산의 절반은 입장료에서, 나머지는 서울시 예산 지원으로 충당된다. 현재 입장료 3000원(어른)은 2003년 인상 이후 10년째 그대로다. 근처 에버랜드는 입장료만 3만~4만원 수준이다. 입장료를 높일 수 없으니 시설투자비 대부분은 시의 예산 지원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공원 시설물 유지 보수 및 정비 지원 예산은 연평균 30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공원 관계자는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대공원을 30억원 정도로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공원 관계자는 “매년 300만 명의 입장객 중 절반은 경기도민이고, 30% 정도가 서울시민인데 입장료 현실화 없이 시의 예산으로만 유지 보수를 하라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글·사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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