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속에 흐려져 가는『백제정화』|공주 무령왕릉 발굴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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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 후 최대의 발굴로서 새삼 백제문화를 재평가하게 한 공주 무령왕릉의 유 구와 유물은 만 1년만에 또다시 망각 속에 흐려지고 있다. 그 찬란한 유물은 박물관창고 속에 사장돼 있고 유 구의 보수공사 때문에 왕릉근처에는 일반의 접근이 안 된다. 작년 말까지로 이미 실물에 대한 조사와 처리가 끝났음에도 공식적인 보고가 아직도 요원한 상태.
학계에서는 이에 관한 단 1편의 논문도 발표한 게 없다.
온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백제25대 무령왕릉이 발굴된 것은 71년 7월8일. 하오5시 현실내부가 개봉돼 유물이 완전하게 보존돼 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숨막히는 긴장과 흥분의 소용돌이가 공주일대를 금새 1급 명소도 만들어 놨다.
유물을 현지에 두어야겠다는 공주시민들은 공주박물관을 에워싸 투석으로 농성했고 서울까지 유물을 운송하는데 호송무장경찰이 특별 배치됐다. 관광객이 몰려들자 조치원∼공주사이의 도로가 부랴부랴 포장됐고 현존박물관으론 유물을 보관할 수 없다하여 즉각 신축 안이 추진됐다. 모두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유 구와 유물은 왕릉관리자인 문화재관리국이나 흑은 국립박물관만이 단독으로 조사, 발굴, 처리할 성질이 아니었다. 7월말에 고고·미술공예·역사고증·과학처리의 4개 반에 걸쳐 25명의 조사위원으로 구성된 종합조사단이 발족되었다. 또 국민들의 호기심이 너무 컸기 때문에 대충 정리한 유물들을 가지고 10월에 특별 전을 마련했다.
그 후 무령왕릉의 얘기는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또 학계의 주목에서도 차차 흐려져 왔다. 다만 지난 3월 일본에서 명일향촌에서 고분벽화가 발견됨을 계기로 하여 우리의 왕릉발굴을 잠시 상기했을 뿐. 주무 문화재관리국은 1차 보수공사를 끝낸 뒤 손을 놓고있으며 조사단에서는 각 분야의 기초적인 보고서 원고조차 모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도 이제는 무관심한 형편.
그러나 일본에서는 금년에 있었던 발굴 중 세계의3대 발굴로서 ①중국의 한 대 묘 ②한국의 무령왕릉 ③일본의 고송총을 들고 있는데, 과연「아스까」촌 벽화고분이 이에 포함될 수 있을는지 의문이나 그들의 무령왕릉에 대한 주목은 한층 고조됐다.
그들은 무령왕릉을 보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주를 방문하고 있다. 또 국내에는 조사단의 공식보고가 돼 있지 않지만 일본학계는 벌써 무령왕릉에 대한 자료를 다 입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조사반에 의하여 확인된 유물의 총 점수는 금관·금귀고리·청동일·동경·환도·석수·목관·두 침 등 88종에 2천5백61점. 그중 극소수만이 공주박물관에, 거의 전부가 국립박물관 본관에 수장 돼 있다. 이 유물들은 경복궁의 국립박물관이 개관되면 일부를 전시하겠다고 하며 공주박물관의 새 청사가 완성되는 대로 74년 초까지는 모두 이관시킬 계획이다.
김원룡 박사를 단장으로 한 무령왕릉 종합조사단은 ①고고 기초 반에 윤무병 김정기 한병삼 이호관씨 등 7명 ②미술 공예 반에 황수영 최순우 진홍섭 ③역사고증 반에 임창순 이기백 김철준 ④과학처리 반에 김유선 노재식 박용완 조종수 김원조 이태령 제씨 등이며 총무에 문화재 관리국장.
이중 과학처리 반이 쓴 각 분야 보고서는 들어왔으나 그 밖의 반에서는 준비중이란 말 뿐, 보고서의 간행은 연내에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 동안 조사단에 지급된 보조금은 2백40만원의 과학적 처리비를 포함하여 5백50만원. 유 구의 현장 발굴은 작년 8, 9월 두 차례에 걸쳐 베풀어졌다.
학계에서는 모두 왕릉과 유물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막상 그를 접할 기회가 없고 또 공식보고가 돼 있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약식보고서 쯤 은 발굴직 후 낼 수 있었지 않느냐고 학계는 항의하고 있으나, 실제 특별 전 도록 이외엔 어느 조사위원도 발표한 일이 없는 것이다.
문화재관리국은 사적으로 이미 지정된 이 송산 리 고분지대에 관리사무소를 설치하고 주위에 철책을 두르는 등 보호사업을 계속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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