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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서와 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공무원 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불신과 무고의 풍조가 도도히 흐르고 있어 국민의 마음을 우울케 하고 있다. 서울시장은 무고와 불신사조를 일소하기 위하여 거짓투서를 낸 10명을 구속, 15명을 수배하고 5명을 입건하였다. 이들은 단순한 개인감정으로 타인을 무고했거나 상대방업자를 중상하기 위하여 고발했으며, 또 민사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허위동정서를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서울시경이 접수한 9천9백10건의 각종 동정탄원서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 36%가 허위로 밝혀졌고, 그 중 7백74건이 무고로 입건되었다하니 시민의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무고행위에는 아연할 따름이다. 아무리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졌다고 하더라도, 또 아무리 개인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서로 중상모략으로 상대방을 형벌에 처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창피하고 가증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무고사건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교육계에까지도 번져 문교부에서 또 무기명으로 보낸 것은 거의가 중상모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 산하에 투서행위의 엄금을 지시한 바까지 있었다.
교육기관도 이러하거늘 다른 행정기관이나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대한 투서는 더 허무맹랑한 것이 많았으리라고 생각된다.
해방직후의 좌우대립과 그 뒤의 전란 등을 겪는 동안 우리국민 가운데에는 개인감정으로 남을 「빨갱이」로 몬 자가 많았으며, 6·25이후 적 치하에서는 악질반동분자로 몰아 인민재판에서 사형까지 시킨 일이 허다하였다.
이러한 일은 5·16이후에도 축첩공무원이다, 부정부패공무원이다 하여 투서가 잦았지만 그 대부분이 허무맹랑한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었다.
슬기로운 국민이라면 부정부패행위를 인지하였을 경우, 비굴하게 무기명으로 투서질이나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이를 고발하거나 관계자의 파면을 청원하는 것이 공민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주소·성명까지 명기하여 청원하여야만 그 청원의 처리결과도 통보될 수 있는 것이기에 청원인은 반드시 성명을 기재하고 증거를 표시해야만 할 것이다.
무기명으로 투서하는 행위는 결코 떳떳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익명의 투서가 이렇게 많은 데에는 전혀 이유가 없지도 않을 것이다. 부정과 부패를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기명으로 하는 경우에는 보복이 두려워 무기명으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기명으로 해 놓으면 수사기관에서 성가시게 오라 가라하여 생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무기명으로 하는 경우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국자는 기명고발자를 이제까지 불가하게 괴롭혀 온 일은 없었던가 깊이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경찰이 인지한 범죄사건 중에도 시민의 고발정신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많을 것이므로, 시민의 고발정신을 위축시키는 일은 있어서 안 될 것이다.
또 재판에 관련된 허위진정사태도 많다고 하는 바, 이것은 재판이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산 증거라고 하겠다. 경찰이나 검찰은 민사소송을 형사사건화 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나 법원은 사법의 공정을 확보하여 땅에 떨어진 위신을 회복해 주어 이러한 투서행위를 근절해 주기를 바란다.
경찰이나 검찰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기관이 무기명투서를 소각해 버리는 일을 계속할 때, 무기명투서행위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기에 각 기관에서도 서울시경을 본 받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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