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은행 비리,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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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KB국민은행에서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비리 사건은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도쿄 지점의 부당 대출과 비자금 조성 의혹은 몇 년째 감춰져 왔다. 2008년 인수해 4000억원의 손실을 낸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에 대해 현지 금융당국이 올 3월 업무정지 조치를 내렸지만 국민은행 경영진은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은행업의 기본 중 기본인 내부통제시스템이 작동은커녕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민주택채권 90억원 위조·횡령 건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애초 2010년 본점 직원 1명과 영업점 2명의 돌출 범죄인 줄 알았더니 최소 10여 명이 연루된 ‘조직 범죄’란 사실이 드러났다. 그중엔 비리 적발이 임무인 감찰반 직원까지 포함됐다고 한다. 금액도 100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채권은 대개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100억원을 횡령하려면 최소 1000장 넘게 위조·교환해야 한다. 주택채권은 한 지점에서 1년에 1~2장 정도 교환되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1000여 장을 교환하려면 하루 이틀, 한두 사람 갖고는 안 된다. 감독 당국은 알려진 2010년보다 훨씬 전부터 이런 조직적 횡령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경영진은 책임 미루기에 급급하다. 전임자 시절 일이니 나 몰라라 식이다. 한 술 더 떠 이사회는 전임 행장에게 지난달 거액의 주식성과급(스톡그랜트)을 줬다. 직원들 사이에선 “전 정권 손보기에 희생양이 됐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니 이런 한심할 일이 없다. 그럼 이런 비리가 영영 감춰져 횡령한 고객 돈으로 대대손손 제 배를 불렸어야 옳았다는 말인가.

 이제 금융감독원 특별 검사와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부실과 비리의 전모가 드러나는 대로 전·현직 경영진을 엄벌하고 배상 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할 것이다. 감독 당국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금융 문외한인 정권 실세 낙하산에 눈 감고, 권력 눈치 보며 감시·감독을 미뤘다가 2800만 고객과 300조원의 자산을 가진 국내 대표 은행을 이 지경으로 망가뜨린 것 아닌가. 그러니 국민은행의 비리가 명백히 드러난 지금에도 늑장·뒷북에 표적 검사 논란이 이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