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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전도 북 에이레 휴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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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에이레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가톨릭」 과격파 단체 「에이레」 공화군(IRA)이 치안 유지를 맡고 있는 영국군의 자기들에 대한 군사 행동 중지를 전체, 26일 0시를 기해 휴전에 들어감으로써 2년 10개월에 걸쳤던 북 에이레의 내전 상태가 정치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다소 비쳐졌다.
그러나 일단 IRA가 무역 항쟁은 포기했으나 IRA내의 「프러비저널」파가 같은 구교국인 「에이레」 공화국(남 「에이레」)과의 통합을 위한 전 에이레 연방안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앞날이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로 남아 있다.
북 「에이레」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구교 주민간에 정치적·사회적·직업적 권리 주장을 둘러싼 역사적 구원의 폭발이다.
겉으로는 종교 분쟁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심층에는 제반 분야에서 차별을 받아 온 「가톨릭」계 에이레 주민의 울분이 깔려 있다. 이 분쟁은 지난 69년8월 이후 4백명이 사망(그 중 영국인 1백명) 6천명이 부상하고 5천2백만 파운드(한화 약5백20억원)의 재산 손실을 초래했다.
영국 정부가 지난 3월 신·구교도간의 유혈 종교 분쟁 사태로 인해 파국 직전에 처했던 북 에이레에 52년만에 자치 제도를 폐지, 「직접」 통치를 선언하고 영국 군을 투입했을 때 대부분의 업저버들은 분쟁 해결의 전도를 불안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정치적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무기한 휴전을 가져온 것은 다수 「프로티스턴트」(신교)계 주민들을 누르고 소수 「가톨릭」계 주민 온건파와 끈덕진 교섭을 벌여 가톨릭 주민과 IRA를 분열시키려는 「화이트로」 담당상의 정책이 주효했던 것으로 일단 풀이된다.
「화이트론」 담당상은 직접 통치권을 인수한 이래 데모·집회의 제한 완화, 비상권한 법에 의한 「가톨릭」 과격파 구금자들의 단계적 석방, 소수 「가톨릭」 주민들의 저항 의식에 대한 탄압 완화 등 유연 정책을 써왔다. 이와 병행, 그는 「포크너」 전 수상이 이끌던 신교도 독재 정권하의 「가톨릭」계 야당이었던 사회주의 노동당과 제휴함으로써 민·정 양면에서 「가톨릭」 교도들의 환심을 사는데 조심스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최근 IRA의 휴전 제의설이 유포되기 이전부터 IRA 내부에는 교섭파와 계속 무력 투쟁파가 격론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술면에서 온건 노선을 취해온 IRA안의 「오피셜」(본부)파가 지난달 휴전에 동의한데 뒤이어 「가톨리」 주민들로부터도 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자 호전적인 「프러비저널」파(80%)도 결국 휴전을 제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영국의 「직접통치」에 가장 큰 반발을 보인 「프로티스턴트」 과격파들의 「가톨릭」 주민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하는 우파 시민들의 우려가 휴전 결정의 여론을 이끈 한 요인이 됐음을 입증하기도 한다. 한편 「가톨릭」계 주민들이 휴전을 환영하는 것과는 달리 「프로티스턴트」 교도, 특히 과격파들은 이를 영국과 IRA와의 「비밀흥정」으로 몰아붙이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전도가 결코 밝다고만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IRA가 휴전을 선언하고 난 후에도 「테러」 사태가 간헐적으로 재연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결의가 하부 구조에까지 효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해 볼 문제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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