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요 되찾기 운동전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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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의 농촌은 「고양이의 손도 빌리고 싶을」만큼 바쁜 농사철이다. 모내기는 대충 끝냈지만 보리베기·밀베기로 뼈진 고됨이 남아있다. 이럴 때 흥겨운 농요라도 콧노래 섞어 한가락 읊을 수만 있다면 생기라도 돌겠지만 부를 노래가 없다. 노래는 있었지만 일제는 우리한테서 많은 농요 마저 뺏어가 모두들 잊고있기 때문이다.
이 「빼앗긴 노래」를 되찾자는 운동이 전북 익산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농요회. 지방의 명창인 박갑근씨(51)를 중심으로 회원 45명이 뭉쳐 민속예술발표 등을 통해 농요 발굴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익산농요회는 처음엔 「율계」라고 불렸다. 5년 전의 일. 이 고장 삼기·금마·낭산 등지의 노·장년 30여명이 심심풀이로 시조와 민요를 배우자고 해서 꾸민 모임이 「율계」였다. 이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기껏 사랑방이나 정자나무 밑 그늘에 모여 앉아 시조 같은 것을 흥으로만 흥얼거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갑근씨가 들렀다. 박씨는 이들에게 『일제에 빼앗겼던 노래를 들려주마』면서 몇 가지 동요를 구성지게 불렀다. 노래 가운데 「농부가」의 앞소리 『이 농사를 지어내 가을 추수한 연후에, 나라에 봉공하고 남은 양식 모아놓고, 함포고복 하여보세』라는, 일제에의 항거의식이 번득이는 대목에 와서는 모두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여졌다.
이밖에도 박씨는 풍년을 비는 노래, 농촌남녀의 소탈한 사랑주고 받기 농요를 불러 율계 회원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노래가 있었다』는 새 발견으로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때부터 율계 회원들은 이름을 농요회로 고쳐 농민예술의 보급을 위해 틈을 내서 전국농촌을 돌아다니기로 지금 계획을 짜고있다. 익산농요회는 지난해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요부문에 우승, 문공부장관상을 탔다.
이때 이들은 흙 냄새가 물씬 풍기는 농민의 모습으로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익산 농요회는 이에 힘입어 앞으로는 농사일에 따라 쇠스랑으로 못자리를 파며 흥농가를, 보리를 베며 타작노래를, 모내기를 하며 풍년가를, 김을 매며 김매기 노래를, 재벌김을 매며 만두래 등 잃었던 농요를 불러 전국농촌에 메아리 차도록 힘을 쏟고 있다. <이리=이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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