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유제한<한글학회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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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자」와「한문」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문교부가 발표한 1천7백81자는 한자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중-고교 학생들에게 이 같은 한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의 후퇴라고 본다. 1천7백81자를 모두 한글로 표기해도 독해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을 굳이 가르친다는 것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는 뜻밖의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자를 가르치려면 그 이상을 가르쳐야 한다. 일반대중은 우리고유의 말을 쉽게 풀어서 쓰는 등 한글을 전용하고 각 대학에 한문학과를 따로 두는 등 한문학자는 따로 길러야 한다고 본다.
한문은 영어·독어 등 다른 외국어와 다른 표의문자라 평생을 두고 배워도 부족하다. 이처럼 어려운 한문을 1천7백 여자로 제한, 중-고교생에게 가르쳐봐야 그 의의를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문교부 당국은 한자교육을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감이 있다. 1천7백81자를 오는 여름방학 한달 동안 교사들에게 강습시켜 2학 기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한다니 말이다. 오랜 시간 두고두고 연구한 뒤에 실천에 옮겨야 될 줄 안다.
이 어려운 한문교육을 나이 어린 중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학생 가운데 장래로 한문학을 전공할 학생들에 한해 한자의 제한 없이 보다 철저하고 체계 있게 가르쳐야 될 줄 안다. 대학교에 한문학과를 신설해야 한다는 본인의주장도 여기에 있다.
문교부가 선정한 기초한자를 다 해독한다 치더라도 요즘 신문 1.2면을 제대로 읽고 해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물론 여기에는 신문의 책임도 없지 않다. 우리고유의 말을 쉽게 풀어서 쓴다면 머지않아 한자 없이도 신문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문자의 기계화가 시급히 요청되는 요즘 우리는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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