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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숙종 때 암행어사 박만정의 행적(제자는 『해서 암행일기』의 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백천 군수에 대한 보고의 계속)-백천 군수는 환상미(춘궁기에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었다가 추수 후에 받는 곡식)를 나눠는 데에도 매우 착실치 못하였다. 환상미를 얻으려는 자 가운데 장정에게는 1말1되3홉4작을 주고 노약자에게는 7되3홉을 주었는데 그것도 벼·피·보리·잡곡 등으로 정양만 채웠을 따름이어서 백성들이 모두 비난하였다.

<잡곡 투성이 환상미>
무상으로 주는 양곡에 있어서도 공평치 못하였다. 화과호독(홀아비 노인·과부·부모 없는 아이·자식 없는 노인 등)이나 폐질 자가 허다하게 누락된 데 반하여, 이 고을에서 양반이라고 하여 권력이 있는 사람은 부자일지라도 거의 모두 구호대상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전에 현령을 지낸 신성중과 도사 민진원의 집에서 부리는 다수의 노비에게도 무상분배를 했다.
또 전직 좌수 봉정황은 원래 가난한 사람이 아니건만 그의 노비 근 10가구마저 포함시켜 백성들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그들을 미워했다.
어사자신이 본부 화산촌에 갔더니 한 눈먼 노파가 굶주림으로 죽을 형편이었다. 그 까닭인즉 본래부터 이 고을에 살았는데 남편도 자식도 없어서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때문에 진구 대상에서 빠져버렸다는 것이었다. 노파는 여러 차례 살려달라고 관에 애걸하였으나 끝끝내 양곡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노파는 예 들어 지적했다.
백천 관아에 출두하여 문서를 조사한 결과 다른 곳에서 온 유갈자(떠돌며 빌어먹는 사람)는 별도로 이름을 적어 책으로 꾸며 놓았으되 본시 이 고장에 사는 폐질 자에 대해선 장부에서 누락됐을 따름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양반 집의 노비에게 후히 주며 실제 어려운 사람을 빼놓은 것은 지방 토호들에게 아첨하여 잘 구호하고 있다는 성녀를 얻고자한 소행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향품배(시골에 있는 향사들)들은 군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운답시고 군민들로부터 전곡을 염출하다니 도무지 될 말이 아니다.
무릇 관에서 거둬들이는 갖가지 전곡·포목 등은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인데 이번에 또 조세 액을 심히 인상하였다. 원 수량이 8백83석인데 53석이나 과잉징수, 벌거벗고 굶주린 백성들에 대한 남징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앞에 지적한바 백정들한테 받은 우속전과 조세의 과잉징수액을 어디다 썼는지 물었더니 진휼청에 보냈다 하기도하고 혹은 공방(특별한 도구의 제작소)으로 보낸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문서상에는 그러한 사실의 명백한 기재가 전무했다. 오히려 중간에 있는 자들의 농간으로 모두 사용에 쓰여진 사실이 관계인 들의 진술을 통하여 밝혀졌다.-이상 「서계」에서 발췌>

<4월16일> 새벽에 연안관아 객사로 들어가 조사하였다.

<연안부사 이관조는 아주 숙련된 관리여서 아래 사람들을 엄하게 단속하고, 양곡수납에 있어서도 원만히 처리해 원성이 없었다. 기민에 진구 시책에 흠잡을만한 일이 없었고 특히 관곡을 내놓는 이외에 여분이 있는 달래어 서로 돕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대단히 편안했다. <이상 「서계」에서 발췌>

<4월16일>(생략)

<인심 메마른 부촌>

<4월17일> 맑다. 새벽에 출발하였다. 김 서리가 감기를 앓았으나 강행군하여 15리를 나아가 연안서쪽 검미대 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김 서리에게 참소음 한 첩을 달여 먹였다. 그는 누워서 땀을 내고 좀 낫다고 하기에 또 떠났다.
마탄을 건너 해주 동쪽 청난역원 앞마을에서 말을 먹이고 용매 진으로 가기 위해 갯가의 길을 따라갔다. 저녁때 동병창촌에 이르렀는데 염전이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여염집이 즐비하고 기와집도 꽤있어 푹 쉬고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방새함이 심하여 아예 용매 땅으로 가려 한즉 때마침 밀물이 들어 건널 수도 없어 그만 길거리에서 방황할 판이었다.
마침 문이 열려있는 집이 있기에 들어갔더니 여인 두서너 사람이 마구 욕설까지 퍼붓는 형편이라 다시 물러 나왔다. 언덕을 넘어 길가 초가집에서도 역시 거절하는데 80노부가 위독하여 손님을 맞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참 입씨름하여 가까스로 하룻밤 쉬기를 허락 받았는데, 결국 방을 구하기에 한나절이 걸린 셈이다.

<후대하여 내심경계>
주인은 밥을 지어 공궤하는 것이 여간 후하지 않았다. 그는 이호남이란 사람이다. 나는 용매만호가 진부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3월에 막 부임하였으나 지금은 해주영에 가서 있다고 대답했다.

<4월18일>맑다.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나려 하였으나 비가 올듯하여 부득이 조반이나 먹고 떠나려 주춤거리고 있는데 주인 이호남이 닭을 삶아서 내어다 먹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색을 살피니 우리 일행의 행색을 심히 수상하게 여기는 눈치라 사양을 하고 먹지 않았다. <계속><이봉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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