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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와 세계사|전국역사학대회 강연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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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15회 전국역사학대회가 26일 숙명여대에서 열렸다. 한국서양사학회·역사학회·한국사학회·동양사학회·역사교육연구회·한국경제사학회·한국미술사학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대회에서 조의설 대회장의 개회강연과 「민족사와 세계사」를 제목으로 한 양병우 교수(서울대 문리대)의 강연이 있었다. 다음은 양 교수의 강연요지다.
민족사는 19세기에 성립된 역사서술의 한 형식이다. 역사서술이 역사의 파악 방식이라면 민족사는 민족주의라는 특정관점의 전개형식이다.
19세기는 민족국가·민족주의의 시대였다. 국가의 통일과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 애쓰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 노력은 역사서술에도 나타났으며 민족사는 민족의식의 고취와 민족주의운동의 일익을 담당했다.
「유럽」에 있어서의 민족사는 독일 「프로이센」학파가 대표되는데 이 학파의 「드로이젠」은 『해방 전쟁사』에서 『통일 국가 수립을 위해 입과 붓으로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는 을사보호조약이래 일제에 항거해서 자주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민족운동의 교설을 편점에서 단재 신채호를 민족사가로 들 수 있다.
단재는 『역사를 버리면 민족에게 국가관념이 적을 것이니 역사가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라고 말하면서 애국의 입장을 강조했었다.
민족사는 우리에게 독특한 것이 아니고 세계사적 현상의 일환이며 「유럽」이 먼저 세계사확대활동을 한 때문에 우리보다 앞서 있었을 뿐이다.
「유럽」에 있어서 민족사가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고도로 정치적 서술방식을 취했지만 민족사는 민족해방운동과 민족전설의 편찬과 아울러 진행되었던 것이다.
단재가 한글학자 주시경, 독립운동가 안창호·이승만·김구와 같은 세대인 이었음은 좋은 비교가 된다.
민족사가 정치 지향적이고 애국심을 일으켜 행동으로 이끌 목적을 갖기 때문에 사실을 미화하고 왜곡하기 쉽다.
「프로이센」학파의 「드라이츠겐」은 이점에 대해 『핏기 없는 객관성은 진정한 역사적 감각과는 반대된다』고 주장, 민족사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랑케」는 이들의 연구를 정치에 동원한 사람들이며 정론가들 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문제는 애국심과 학적양심의 택일이 아니라 민족과 진리가 양립하는 길을 찾아야하며 숭고한 정치적 목적을 가졌더라도 사실을 왜곡해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민족사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민족사는 국수주의적 성적을 띠고 있다. 단재는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하고 『이 가운데는 아와 비아가 있다』고 했다. 아를 가리고 있는 비아의 문헌들을 비판함으로써 참 조선을 가려내는 작업으로 그는 민족사를 기술했다.
근대 역사조류에 따른 이 같은 작업으로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료의 내적 비판」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는 조선 근세의 종교·학술·정치·풍속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원인을 고려 인종 때 「묘청이 패한 것」에서 찾았다.
묘청이 승리했다면 곧 우리역사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이런 논법은 「베버」가 「객관적 가능성의 판단」이라고 부른 것이며 분석철학자들이 「반사실적 조건판단」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그가 방법적으로 이런 형식을 취한 것은 그 패배의 피해와 영향이 뼈저렸던 점을 원통해 하는데서였을 것이다.
그의 국수주의적 관점이 비판적 근대사학을 성립시킨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민족사와 세계사는 연관을 갖고 있다. 세계사를 보는 관점은 「헤겔」같이 「세계정신의 구현」으로, 「마르크스」같이 「세계사 발전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한민족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어떻게 세계사가 연관되는가를 알아야겠다.
한민족은 독존이 아니고 공존하며 고립 아닌 관계에 놓여 있다. 세계는 민족의 상호관계의 장이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사가 원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세동점에 따라 세계는 하나가 됐지만 한말까지 우리는 동북「아시아」가 세계였다.
이런 문맥 속에서 민족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랑케」의 「세계사의 문법」이다. 그것은 『국가의 내적 상황은 국가상호관계에 의존한다』는 외교정책 우위설이었다.
국내관계의 연구보다 많은 대외관계의 연구를 통해 국제관계의 「패턴」을 파악해야한다. 「랑케」류는 아니라도 우리에 맞는 독특한 국제관계의 「패턴」·구조를 파악해야겠다. 「세력 균형론」에 맞먹는 우리의 관계논리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주의류와 같이 아만을 고집했을 때 독일의 멸망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야한다.
두 민족의 문화사회현상이 비슷할 때 공통점을 파악하고 차이를 밝혀 그 개성적 특징을 드러내는 비교방법이 중요하다.
한말의 개혁정책 등으로 한국이 근대를 받아들었지만 근대적 소유권의 확립이란 중세관념의 과괴에서 온 서구의 근대개념은 너무나 오랜 좌절을 거친 한국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복습해야 할 개념이었다.
『왜 서구에서 합리적 자본주의가 생겨났는가?』하는 「베버」의 말과 함께 『우리에겐 왜 근대가 없었나?』를 진지하게 물으면서 민족사와 세계사의 관계를 검토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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