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On Sunday

연중 ‘공사 중’인 뉴욕의 교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 출장차 방문한 뉴욕의 길거리는 공사판을 방불케 했다. 인도 곳곳이 철골 구조물 위에 합판을 댄 임시 지붕으로 뒤덮여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 빌딩들도 상당수가 공사 중이라며 정문을 폐쇄해 입구를 찾느라 헤맨 경우가 많았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들과 타임스스퀘어의 현란한 불빛,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노란 택시 같은 뉴욕의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곳곳에서 공사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투덜대자 뉴욕에서 4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설명했다. “여기는 지은 지 100~200년 된 건물이 많아 함부로 허물거나 신축을 할 수 없어. 그렇다보니 수리가 잦은 거야. 뉴요커들이 뉴욕을 사랑하는 방식이지.”

세계 금융과 패션의 첨단을 달리는 뉴욕엔 사실 옛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6년 전 들렀던 치즈케이크 가게나, 3년 전 가봤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모두 인테리어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손으로 쓴 메뉴판을 내밀었다. 센트럴 파크 앞에는 마차들이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렸고,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선 사람이 페달을 밟아 달리는 인력거 ‘페디캡(pedicab)’들이 ‘1분당 4달러’란 팻말 아래 호객을 했다. 인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25년째 같은 극장(마제스틱)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10년 전 명동 거리엔 여성복 브랜드 매장이 즐비했다. 그 뒤 몇 년 만에 미용실 거리로 변신하더니 지금은 저가 화장품 매장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파리에선 100년 전 지도를 갖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데, 서울은 6개월만 떠나있어도 거리나 건물이 변해 있다는 게 여행객들의 얘기다. 그래서 ‘다이내믹 코리아’가 한국을 상징하는 말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공간이나 건물에 얽힌 시민들 개개인의 추억은 ‘응답하라 1994’ 같은 드라마에서나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저녁, 숭례문을 지나쳤다. 중국인 모녀 관광객이 조명을 받아 번쩍이는 숭례문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그냥 예쁜 옛 건물이어서가 아니라, 600년 서울을 지켜온 한국의 국보 1호 역사를 담아가고 싶어서일 테다.

이런 숭례문이 어이없게 전소(全燒)하도록 방치하고, 최근 밝혀진 것처럼 복원까지 부실로 일관한 우리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뉴요커들이 매년 5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맨해튼 전역을 공사판으로 만들면서까지 지키려는 건 거기 깃든 그들의 역사와 추억이 아닐까.

우리가 옛 건물을 무조건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데 골몰하면서 ‘한강의 기적’이라 자화자찬하던 때는 지났다. 이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와 추억, 정서가 살아 숨쉬는 도시를 만드는 쪽으로 개발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국적 불명의 고층빌딩 대신 한국인의 삶과 역사가 밴 거리와 건물들이 외국인을 반기는 서울의 모습을 보고 싶다.

류정화 정치부문 기자 jh.ins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