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일 도상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늘 신문을 보니, 동·서독 통행 협정에 대한 소식이 실려 있다. 갈라진 두 지역 사이에 사람과 물자의 왕래를 늘리고, 쉽게 한다는 소식이다.
같은 신문에 요즈음 날마다 실리는 「베트남」전쟁의 소식도 나와 있다. 「파리」회담을 열자니 못 열겠다 거니 하는 이야기다.
역시 같은 지면에 미국 상원의 무엇인가 하는 국회의원이, 한국에서의 남북적십자회담이·매우 중요한, 움직임이라는 의견을 말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이들 세나라는 지표 위에서 차지한 자리는 서로 다를 망정 「분단」이라는 처지를 나누어 가진 나라들이다. 지난번 전쟁의 뒷마무리가 지구 위의 이 부분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의 결과로 빚어졌다는 큰 테두리는 비록 같을 망정, 분단의 경위나 현상은 이들 세 나라가 서로 다르다. 독일은 미·불·영·소에 의해 점령 분단되었고, 이후 정세는 갈수록 부드러워져서 이제는 외세가 더 간섭한다든지, 동족간에 전쟁이 일어날 염려는 없을 것 같고, 이번에는 「통행 협정」이라는 형식으로 한층 관계가 부드러워진 셈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2차 대전 전후부터 국토가 싸움터로 변해서, 오늘까지 폭탄을 소나기 삼고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아이들이 커 오고 있다. 이런 땅에서 자식 기르면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라고 할만큼 속 편한 처지가 아닌 것이 몰론 우리네 형편이다. 독일처럼 4국 대신에 미·소 2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베트남」 보다는 못하겠지만 동족의 전쟁을 겪었고, 아직껏 서로 잡아먹지 못해 하거나 아니면 속을 주지 못하겠다는 시늉으로 노려보는 형편이다.
분단이 되기는 우리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닌데, 근래에 오면서 통일 문제 같은 것은 「현지」사람들끼리 할 수 있으면 잘해 보라는 것이 이른바 「대국」의 의중인 모양이다. 따라서 그 「현지」에서의 동족전에도 기왕처럼 개입하기는 난처하고, 할 테면 「주체적」으로 할 각오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태도가 완연해지고 있다. 전쟁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이것은 옳은 말이다.
독일은 아마 동족전을 할 「주체성」은 영원히 사양할 모양이고, 대신 「통일 도상국」이 될 생각인 것 같다. 「베트남」은 현재 열심히 「동족상잔 도중국」인 형편이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아뭏든 포화는 잠깐 멎고 있으니 「상잔 도중」이라 하기는 과한 표현이고, 그렇다고 적십자 예비 회담을 미적미적하는 처지에 「통일 도상」이라 하기도 허풍스럽다. 말하자면 어중간한 셈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가에 한족의 문명도가 가름된다.
필자의 취미로 보면 「통일 도상국」이 되는 쪽을 택하겠다. 「개발 도상국」이라는 말보다는 한국 역사의 오늘에 대한 역사적 책임 소재가 풍기고, 경제까지도 속에 포함한 보다 통합적 「비전」을 표현할 수 있다는 어감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통일 없는 빵이 가져오는 것은 아마 도덕적 타락뿐일 것이다. 【최인훈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