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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달기 좋은 날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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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목매달기 좋은 날씨다!” 안톤 체호프의 ‘바냐아저씨’에 나오는 대사 한 대목이다. 얼마 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바냐아저씨’를 관람할 때 극중에서 바냐가 이 구절을 큰 소리로 외치자,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일상이 늘 무료했고 이렇다 하게 신나는 일조차 없던 바냐에게는 차라리 그렇게라도 소리치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 나이 47세인 바냐는 ‘목매달기 좋은 날씨’라는 말을 통해 최소한 자기 삶이 아직은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게나마 살아 있다는 것을 방증함과 동시에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목매버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는 삶에 대한 어찌할 도리 없는 체념이란, 그 이율배반된 양면성을 이 한 마디에 담아 뱉어내듯 외친 게 아니었을까 싶다.

 # “늙은 거야. 아무리 속이고, 허세를 부리고, 멍청한 척해도 인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거야. 70년이 휭 하고 지나가 버린 거라고! 되돌리지 못해.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밑바닥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거야. 찌꺼기만 남은 거지. … 네가 바라든 바리지 않든 이제 시체 역을 연습해야 할 때가 된 거야.”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 중에서 늙은 배우 스베틀로비도프가 공연이 끝난 후 술을 퍼마시고 분장실에서 쓰러져 잠들다 깨어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내뱉듯 던진 대사의 한 대목이다. 거의 다 마시고 밑바닥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찌꺼기 같은 인생! 인생 100년을 산다한들 모든 시간이 살아 있는 시간이긴 쉽지 않다. 살아서 숨쉬어도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늙은 배우의 한탄이야말로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생을 무력하게 연명하는 인생의 어쩔 수 없는 형벌에 대한 외마디 항변 아니겠는가.

 # 체호프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에서 스베틀로비도프 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언제 진짜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라고. 그러자 허공을 가르며 답이 돌아왔다. “무대에 설 때다”라고. 실제로 그녀는 반세기 넘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서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경이로운 일이다. 아니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다. 계산 빠른 사람이 하기엔 너무 배고픈 것이 연극이고 그 일이 큰돈을 버는 것도, 세상이 대단하게 알아주는 일도 아니지만 그녀는 한눈팔지 않고 외길로 왔기에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단호함 앞에서 일흔 하나라는 나이는 청춘의 박력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살아 있는 순간이 있으리. 그 믿음을 갖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에게 진짜 살아 있는 시간은 무엇인가. 언제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큰돈을 벌 때일까? 큰 상을 받을 때일까?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일까? 선거에서 당선됐을 때일까? 아니 그것은 자기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낼 때이리라.

 # 시장선거에서 한 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 떨어진 사내가 있다. 정치한다, 선거 치른다 하며 허구한날 바깥으로 나돈 까닭에 가족과도 소원해진 그가 어느 날 어린 딸과 마주앉아 다소 서먹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아빠가 여차여차해서 세 번 떨어졌다”고 말하자 대뜸 이런 말이 돌아왔다. “세 번 떨어진 게 아니라 세 번 도전한 거잖아!” 그 말을 듣고 이 사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풀이해 말했다. “그래 나는 세 번 떨어진 게 아니라 세 번 도전한 거야!”라고. 그렇다. 분명 세 번 떨어졌지만 그 이전에 세 번 도전한 거다. 삶의 긴장이 생의 동력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생의 도전이 새로운 희망을 일군다. 긴장과 도전이 없으면 삶은 시든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도 희박한 산소처럼 자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찰스 핸디(Charles Handy)의 말처럼 “정녕 미래가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긴장과 도전 속에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