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애플 특허 무효인데도 … 미국 배심원 '감성 평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삼성전자 로고가 애플 로고를 향해 바짝 다가선 듯한 모습의 화면 앞에서 한 남성이 갤럭시S4를 들고 작동해보고 있다. [로이터=뉴스1]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애플의 ‘안방’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미국 배심원들은 이번에도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에서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에 2억9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이 나왔다. 애플의 손해배상 청구액(3억7978만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삼성전자 주장(5270만 달러)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다.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해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는 애플의 주장 대부분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1차 소송에 이어 자국 기업에 유리한 평결을 내린 ‘동네 재판’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배상액 산정의 주요 근거가 된 ‘핀치투줌’ 특허부터 그렇다. 최근 미국 특허청(USPTO)에 의해 ‘무효’ 판단이 내려졌지만 배심원들은 삼성이 특허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은 USPTO의 무효 판단을 배경으로 재판 중단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특히 애플은 재판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 창업자의 영상을 상영해 향수를 자극하고 미국 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썼다. 이번 평결을 내린 배심원들은 지난해처럼 애플 본사 인근 지역민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8월 평결에서는 삼성전자 협력사와 소송을 해 파산한 사람이 배심장으로 평결을 주도해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증거에 입각해 공정하게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배리 골드먼 홀 배심원은 “애플이 훨씬 많은 정보를 제공했고 삼성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임원은 재판에 왜 참석하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평결은 삼성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손해배상액과 소송비용보다는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는 이미지 타격이 가장 큰 걱정이다. 영국·독일 등 9개국에서 진행 중인 삼성과 애플의 30여 건 특허소송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내년 3월 시작될 다른 휴대전화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에 미칠 영향은 속단하기 이르다. 이 소송에는 ‘갤럭시S3’ ‘아이폰5’ 등 1차 소송 대상이 아닌 모델들이 대거 포함됐다. 법무법인 정률의 정관영 변호사는 “내년 소송의 대상인 제품들은 애플의 특허를 우회한 새 기술이 적용했기 때문에 사안이 다르다”며 “애플에 우호적인 배심원의 분위기가 우려되지만 미국의 잇따른 애플 지키기 결정에 대한 반발도 나오고 있어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실적이나 재무구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IM(IT·모바일)부문 영업이익이 6조7000억원에 이른다. 1조원을 물어주더라도 치명타는 되지 않는 다. 흥국증권 민상일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이미 소송과 관련해 충당금을 쌓아놨기 때문에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에서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0.69% 오른 145만원에 장을 마감했다.

 한편 재판장인 루시 고 판사는 이번 평결을 토대로 내년 초께 최종 배상액을 확정한다. 지난해 8월 배심원들은 삼성전자 26개 제품이 애플 특허 5건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10억50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루시 고 판사는 배심원단이 배상액을 잘못 계산했다며 이 중 6억4000만 달러만 확정했다. 나머지 부분에 대해 새로 배심원단을 구성해 진행한 재판이 이번 평결이다. 이번 결정이 최종 판결로 확정되면 삼성이 물어야 할 손해배상액은 이미 확정된 6억4000만 달러까지 합쳐 총 9억3000만 달러(약 9870억여원)에 달한다.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98만 대나 팔아야 하는 돈이다.

 평결에 대해 애플은 “삼성이 불법 복제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USPTO에서 무효로 판단한 특허를 주요 근거로 이뤄진 평결”이라며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해용·박수련 기자

핀치투줌=터치스크린 기기 화면을 조작할 때 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이거나 화면을 확대·축소하는 기능이다. 애플은 배상액 재판에서 이 특허권의 침해에 대해서만 1억1400만 달러가량의 손해배상을 삼성에 요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