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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여성 우리나라에서의 실태(31)-만화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나라에서 어른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만화작가의 수는 10여명 정도밖에 안되지만, 어린이들 세계로 내려가면 인기작가의 숫자가 1백명 이상이나 된다. 한국아동만화작가협회 (회장 김기율)는 1백36명의 의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 협회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숫자도 상당해서 현역 아동만화 작가의 수는 2백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여자는 10명을 약간 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만화는 현재 두개의 판로를 통해 시중에 배부되고있는데 하나는 상록·신일·흥진 등 3개의 출판사가 묶여진 서울만화총판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새로 시작된 소년 한국일보의 아동만화이다.
이들은 10명에서 1백 명까지의 전속작가를 두고 만화를 그려내는데 총 발행 부수는 한 달에 2만권 이상이나 된다.
이 많은 만화들은 대부분 대본점을 통해 어린이들과 만나게 된다. 1백「페이지」 1권의 정가는 60원이지만 대본점에서 10∼20원으로 빌려 읽고 나면 그뿐이다. 「읽고 버리는 것』이상으로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서점을 통해 선택해다가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 스스로 골라 읽기 때문에 불량만화의 시비가 뒤따르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유통구조에 대해 가장 가슴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만화작가들이다.
지난 어린이날 아동만화 윤리상을 받았던 여류작가 엄희자씨는 『만화가 어머니들 손에 의해 선택되고 어린이들 책상에 오래오래 보존될 수 있는 내용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출판사들의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만화가 요구된다면 만화가들의 자질도 향상되고 사회적지위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 몰래 읽고, 읽고는 버리는 것』으로 되어버린 아동만화를 직접 그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직업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엄희자씨는 『나 자신이 6살, 3살 난 두 아들을 기르고 있으므로 아동심리라든가 교육적인 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되며 이런 내용으로 엄마와 어린이가 같이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만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서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만화를 배울만한 교육기관이 없으므로 만화가 지망생들은 기성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게된다.
만화가협회는 5월과 11월에 논문과 실기로 자격시험을 실시해서 자격증을 주고 있지만 자격증이 있어야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 의해 재주를 인정받으면 곧 일을 맡을 수도 있다.
부산남여상을 졸업하고 10년 이상 만화를 그려온 송순희씨는 20명의 문하생을 두고 있는데 그중 2명이 여자이다. 문하생 중에는 고등학교 학생·대학생·가정주부 등이 섞여있다. 그들은 일의 양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 열심히만 하면 한 달에 3, 4만원정도 받을 수 있다.
만화작가의 고료는 1백「페이지」 1권에 2만원∼5만원으로 급이 다르다. 남녀 차별은 없으나 현재의 여성만화가들은 대부분 B급 아래이며 한 권당 3∼4만원의 고료를 받는 게 보통이다. 송순희씨의 경우에는 지난달 26권의 만화를 그렸으므로 80만원이상의 고료를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20명의 문하생에게 가는 돈을 빼면 10∼20만원 정도의 수입이 남는다.
소년한국에서는 아동문학가들이 쓴 「시나리오」를 만화가들에게 주어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스토리」의 구성까지도 만화가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스토리」를 짜내고 구도를 잡는 것까지는 만화가가 하고 세부적인 그림은 문하생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그려 넣는 일은 만화가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 분업한계이다.
대부분 여고출신인 여성만화가들은 『사춘기 때에 가장 만화에 적합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같다』고 경험을 얘기한다.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문하생노릇을 할수도 있고 만화가로 독립한 후에는 가정생활과 무리 없이 양립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송순희씨는 많은 여성들의 진출을 권하고 있다. <강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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