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전 경주는 이랬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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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경주문화원 등이 2년 여에 걸쳐 완성한 ‘신라황성도’. 월성 황룡사 분황사 첨성대 대릉원 남궁 등을 재현했다.

신라 전성기 7세기의 화려했던 황성(皇城) 모습이 그림으로 재현됐다.

 경북 경주시는 20일 문화재 관련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라황성도’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앞서 2011년 6월 경주시는 신라황성도 제작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타당성과 필요성에 공감하고 경주문화원에 제작을 의뢰한 바 있다. 그림은 성삼문·허난설헌 등 국가표준영정 6점을 그린 동국대 경주캠퍼스 손연칠(65·불교미술) 교수가 2년4개월에 걸쳐 그렸다.

 이번에 완성된 신라황성도는 가로 5m, 세로 2m 500호 크기로 닥나무종이인 금박바탕에 채색했다. ‘황금의 나라’ 신라의 영광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구도는 월성을 중심축으로 계림 등의 역사적 공간과 전랑지 사이의 중심시가지, 위로는 북천의 건너편까지 포함시켰다.

오른쪽으로는 황룡사지와 분황사가 위치하고 그림 위는 양존사지와 헌덕왕릉까지 그렸다. 왼쪽으로는 쪽샘 인근 왕릉 유적지와 북천 인근 성덕대왕신종이 걸렸던 봉덕사지까지를 압축해 재현했다.

 월성은 궁성으로 재현됐다. 1985∼93년 발굴 조사 결과 월성과 그 주변은 신라의 중심지로서 궁성과 각종 중앙 관청 시설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7세기 중반 선덕여왕 때 첨성대와 황룡사 9층 목탑이 만들어지고 월성에 한정됐던 궁궐은 사방으로 확장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전성기 때 황성은 17만8936호에 1360방 55리에 이르렀다.

 자문위원회(위원장 손원조)는 그동안 수차례 회의를 통해 역사·고지도 등을 최대한 활용해 사실에 근접한 황성도를 제작했다. 특히 이번 황성도는 일제강점기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실측한 왕경 구역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자문위원은 손원조 경주문화원장,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 임영애 경주대 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됐다. 또 이번 금박바탕 황성도는 앞으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다시 금박을 붙여 교정할 수 있는 특징이 있기도 하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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