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허물어지는 「무표정」…사이공|쾅트리 등 실???후의 시가 동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이공=신상갑특파원】월남 북부의 여러 도시들이 최근 공산군에 함락 내지 공격을 받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내려오던 피난민 대열이 급작스럽게 늘어나 사이공 시내에까지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외면상으로는 어느 정도 평온을 유지해온 이 도시는 이제 전쟁의 급박감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동하」∼「쾅트리」∼「후에」∼「다낭」∼「나트랑」∼「사이공」 그리고 중부고원 지대∼「사이공」으로 이어지기 시작한 피난민 대열은 그렇지 않아도 수용능력을 몇 배 초과하고 있는「사이공」시의 인구를 급속히 증가시키고 있다. 피난민들이 전하는 북부전선의 처참한 상황, 「쾅트리」「후에」시 등지의 적전 혼란 속에서 약탈·폭행·음주 등 혼란을 이루었다는 소식 등은 「사이공」 시민들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은 불안감마저 안겨주는 것 같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티우」 대통령은 3일 군인 뿐 아니라 민간 관리들도 말썽부리는 자에 대해선 즉결 처분권이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티우 대통령은 이러한 경고를 내리면서 『무장강도·「사보타지」·군장비의 유기 및 파괴는 공산군의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자세한 내용의 경고는 그와 같은 무질서한 행위가 북쪽에서 자행됐음을 시사해 주고있다.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사이공 신문이나 정계는 계속 무표정하다. 그동안 민심교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나친 통제를 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피난민의 일을 통해 전지의 소식이 과장되고 있는데도 신문들은 계속 침묵을 지키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공 일부에서 감돌고 있는 이와 같은 절박감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표정은 외국 기자들이 볼 때 안타까울 정도로 태연하다.
거리에는 홍콩에서 제작한 중국식 무협 영화를 보기 위해 줄지어 선 관객들의 모습이 여전히 보이며 낮 12시부터 하오 3시까지의 시에스터(낮잠) 시간도 계속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싸움에 임하고 있는 국민총화의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고 마치 자기네와 무관한 전쟁인양 생각하는 듯 외국인에게 비칠 정도다. 그들의 표정에서 긴장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러나 오랜 전화를 겪은데다가 66년과 68년 구정공세 중 사이공 시가까지 흔드는 포성과 기관총 소리를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약간의 불안은 한국식으로 치면 굉장한 불안을 뜻하는 것이다.
사이공 거리에는 『공산당 타도하자』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시청 앞 광장 르로이 왕 동상 앞에 걸린 전사한 월남군 장교의 초상화가 이따금 지나가는 시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사이공 시민이 느끼는 긴장감은 상가에서 예민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쟁 붐은 간 곳이 없고 암시장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중앙 시장에서 잡화상을 하는 푸옹(24)이라는 아가씨는 갑자기 매기가 없어져 5식구를 부양하는게 어려워졌다고 울상이다.
또 미군표 시세도 1백 피애스터로 폭락했고 대신 금값이 크게 오르고 있는데 이유는 밀수나 PX거래가 안되어 군표의 효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이공의 통금시간은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로 되어 있는데 한때 성업했던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쌀값·돼지고기값 등 생활필수품 가격은 하루하루가 다를 정도로 앙등하고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폭등은 에어·베트남 항공사의 국내선 비행기표로, 공저가격은 4, 5배로 뛰었지만 수요가 엄청나 실제 암표가격은 수십 배나 뛰었다. 그런데도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사실은 피난민의 남하대열이 그만큼 불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