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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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원종례 시작된 지가 2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금주 토요일에 있을 춘계소풍에 대한 안전지도가 생활주임으로부터 교감·교장에 이르기까지 누누이 되풀이됨을 들으며 나는 지루함보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생각되어져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처음으로 1학년을 담임하면서 일어난 일을 그러니까 입학한지 두 달이 채 못된 개구쟁이 1학년들은 「소풍」 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책상을 두드리는 놈,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는 등 기쁨의 환호성으로 그야말로 교실은 일대 수라장이 되었었다. 간신히 달래 놓고 소풍에 대비한 각종 「게임」 및 노래 몇 곡을 불러본 뒤 소풍에 필요한 여러 주의사항을 세세히 설명했다.
마음이 들뜬 아동들의 대답소리가 어찌나 큰 지 교장선생님께서 들여다보시고 웃으셨다.
교실에서 해방된 아동들의 재잘거림과 이상한 나무를 가리키며 꼬치꼬치 캐묻는 고사리 손을 꼬옥 잡고 노래를 부르는 이 흐뭇한 기쁨은 교사들의 유일의 낙이리라.
점심시간이 되어 한바퀴 둘러본 뒤 교사들만이 모여 앉아 점심을 하고 있는데 철이란 놈이 헐레벌떡 뛰어와 『선생님, 큰일났어요. 창식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 죽어가유.』『피도 나요.』 그 뒤에 올망졸망한 겁먹은 눈들이 모두들 동감이라는 듯 수근거리고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급히 삥 둘러싸인 아이들을 헤집고 창식이 곁으로 갔다. 나를 보자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리는 창식이를 업고 산을 내려와 근처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팔을 조금 다쳐 곧 회복이 됐지만 난생 처음 겪는 놀라움에 그날의 소풍계획은 온통 엉망이었고 아동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 주었었다. 도시에 비해 차를 이용하지 않는 소풍이라 방심을 한 나의 불찰로 인한 사고라 생각할 때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뼈저리게 느낌과 동시 마음이 들뜬 건 바로 나 자신이었나 보다고 쓴웃음을 웃었다.
백명숙(충북청원군 내수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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