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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업」소득 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며칠 전「서 업 소득 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한다는 기사가 난적이 있다.
매달 꼬박꼬박 엄청난 갑근세를 물고 있는 나로서는 세무사찰하고는 워낙 거리가 먼 터이지만 표제 중에「서 업」이란 말이 하도 생소하고 이상해서 읽어보았더니 그 서 업종사자들의 분류가 또한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 국세청이 분류한「서 업」중에는 변호사, 공증인, 사법서사, 회계사, 의사를 위시해서 작가, 배우, 가수, 촬영 및 녹음기사, 건축사, 만화가, 직업운동선수에다 심지어 무당, 점술가까지 끼어 있었다.
만인이 법 앞에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 물론 직업의 귀천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신성한 법정에서의 약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나 과학적인「메스」를 가하는 의사나 민중의 길잡이로서의 작가가 푸닥거리를 하는 무당이나 점괘를 농락하는 점쟁이들과 나란히 한「카테고리」속에 묶여 있는 것을 보니 그 어떤 야릇한 풍자적 일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사전이나 옥편에도 없는「서 업」이란 말 자체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 유래가 자못 궁금하다.
국세청의 정의 (?) 에 의하면 영업 세를 내지 않는 소득세 과세 대상자를「서 업 소득 자」라 한다고 친절히 해명까지 하고 있지만 도대체 이「서 업」과「소득세」하고는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것일까? 원래「서」라는 말은「많다」, 「흔하다」또는「잡다하다」는 원 뜻을 가지고 있어서「서무」란 잡무를 보는 곳을 말하며「서민」이란 자기의 손발로 벌어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 가는 평민대중을 총괄해서 부른 양반계급의 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서자」란 정통적인 혈통을 잇지 않은 첩의 자식, 즉 적자의 반어로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직업중의 하나랄 수 있는 배우·가수·변호사·의사·작가들이 하필이면 왜「서 업」이란 잡 업으로 불려야 하는지 도시 이해할 수가 없다.
다방「마담」의 눈에는 손님이 모두 붕 어로 밖엔 안 보이듯이 세 취에 눈이 어두운 국세청은 국민의 직업마저 식별할 능력을 잃었나 보다. 그러기에 변호사건 무당이건 작가 건 점쟁이 건 구별할 필요도 없이 괴상망측한「서 업」이란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게 간편했을는지도 모른다.
어디 한번 대학입학 시험이나 고등고시 시험이나 회계사 시험에「서 업」이 뭐냐고 출제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도대체 몇 명이나 정부의 의도대로 그 뜻을 알아맞힐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말은 만든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사용되던 말도 시대감각에 따라 쓰이지 않게 되면 폐 어나 사어가 되고 만다. 반대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만들어서 강요케 한다고 해서 그 말이 통용될 리도 없다.
한글 전용을 솔선수범 한다는 정부자체가 제멋대로 괴이한「한문공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처사는 비단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김학수<한국외대 교수·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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