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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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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혜석에서부터 시작된 한국의 현대 여류화단에는 초창기 외국유학 등의 선구적 길을 밟았던 사람도 많았으며 국전의 대통령상(박내현), 미 협전의 대통령상(천경자) 등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 적도 있다. 한국의 현실에서 남녀의 차별 없이 개인적인 작업으로 평가되는 드문 분야 중의 하나가 화가의직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현재 미술대학에는 재학생 2백77명중에 여학생이 1백99명이나 된다. 특히 근래에 오면서 여자 미술학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마다 각 미술대학을 나오는 여성은 이렇게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면서도 현역작가로서의 활약은 남자들에 비해 극히 적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생활과 창작활동의 양립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대부분 붓을 놓는 층이 많고 또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듯이 뼈를 깎는 작업이 결국 메아리 없이 현실적「보람」을 좀처럼 얻지 못하는데 대한 실의의 중단 자들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의 작품소화는 외국처럼 본격적 화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전을 갖는다든지 친지를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림이 좋다고 사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사회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억지로 팔리는 것이 대부분이며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대가 급이면 조금 다를 뿐이다.
젊은 층에게는 특히 어느 정도의 이름을 얻는 일이 가장 힘든 과제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개인전」속에서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는 일은「자기완성」의 작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임엔 틀림없다.
그래서 많은 은둔의 화가들이 실의를 맛보기도 하며 또 언젠가의 밝은 날을 묵묵히 기다리며 자기세계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몇몇 화랑에선 위탁판매의 형식으로 작품을 소화시켜 주고 있지만 이러한 혜택을 받고 있는 여류화가는 동양화의 천경자씨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교적 여류들의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는 도라장의 경우 몇몇「그룹」전을 통해 「어느 정도의」 작품만을 소화해 주고 있을 뿐이다.
화랑이나 개인전을 통하기보다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친지를 통한 개인거래를 하는데 여기에도 명성과 사교가 크게 작용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밖에 지방순회로 작품을 소화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개인전 몇 번을 가져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 중에는 지방순회「다방전」으로 수입을 올리는 층이 있지만 여기에는 잡음도 없지 않아 「보따리장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수입의 면으로도 대개 비슷하게 구분이 되겠지만, 현역 여류화가들을 보면 첫째 자기의 창작세계를 굳게 지키면서 그림만을 팔아 생활할 수 있는 대가 급과 경제적인 면과는 관계없이 창작에만 몰두하는 층, 그리고 교사나 교수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는 층이 있으며, 밑으로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젊은 사람들 중에는 막벌이그림을 양산하여 생활하는 층도 더러 있다.
화가의 길을 고수하려는 대부분의 여류들은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하며 그림 팔리는 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자기 인간완성의 길』이라고 말하는 방혜자씨는 예술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반활동과 시간, 경제적 등의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화가라는 일이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높은 수준의 영향을 주듯이 또 누구나 「좋은 일을 한다」고 밝은 표정으로 대해 주듯이 『인간 삶의 의미를 새겨 주는 목표가 뚜렷한 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교수나 교사직은 많은 화가들이 생활방편으로 택하는 직업이지만 작품활동의 시간을 뺏겨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수입 면으로는 요즘 대학교수에게 쏠리는 고교졸업반생의 개인지도가 가장 좋지만 이것은 여자교수에게는 거의 없는 편. 모 교수는 『여자는 입학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묘한 타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가로서의 자기세계 구축이 이렇게 「희생」의 댓가로 이루어지는 한편, 미술대학을 나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술의 길에 앞서 생활해결의 방편으로 이름 없는 그림들을 팔아 생활하고 있다.
「호당 얼마」보다는 「1점에 얼마씩」으로 관광객이나 여고생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수입 면으로 볼 때 순전히 작품을 팔아서 생활하는 여류화가는 한두 명 정도.
천경자씨와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박내현씨 정도다.
천경자씨의 그림은 호당 1만 원 이상. 다음으로 비교적 많은 그림을 팔고 있는 김순련씨는 호당 6천원. 송경씨는 호당 1만 원을 부르고 있다. 방혜자씨의 경우는 「파리」에서 출발할 때의 수준으로 소품은 2만∼3만 원, 10호짜리는 4만 원 선이라고 했다.
보통 40대 이하의 중견급들은 호당 5천원내외, 젊은 층은 3천 원, 그리고 마구 그려 대는 그림들은 1장에 5백원에서 5천원선으로 팔리고 있다.
개인전을 열어 얻은 수입은 천차만별인데 5∼6일 전시장 빌린 경비를 빼낼 수 있으면 성공한 편이라고 한다.
그 밖의 잡수입으로는 잡지표지나 연재소설 삽화,「컷」등을 맡는 일인데 잡지표지는 대가 급이 2만 원∼3만 원, 신문연재소설 삽화는 좀처럼 여자가 맡는 일이 드물다. 「컷」은 1점에 1천 원∼5천 원 정도다.
그러나 화가의 길에서 가장 어렵고 힘드는 일은『평생을 짊어진 십자가를 자기혼자의 노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천경자씨는 말한다. 숨가쁜 화단의 변동에 휘말려 초조하게 「경향」에 쏠리다 보면 토대를 잡기도 전에 순수한 자기세계를 잃고 만다고, 『어느 정도 오래 계속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천씨는 말한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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