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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낙하산' 기업 … 경영평가도 무용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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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체적 원전 비리로 국가적 전력 비상사태를 일으킨 한국수력원자력. 이곳의 사장은 최근 2대째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다. 이명박(MB)정부 때는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이, 박근혜정부에서는 차관 출신이 잇따라 사장으로 임명됐다. 산하기관을 감독해야 할 주무부처의 퇴직 관료가 피감독 기관으로 이동하는 낙하산 인사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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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경영을 잘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 공기업은 방만경영의 수렁에 빠져든다. 부채가 많아 정부에서 특별관리 중인 자산 2조원 이상 공공기관 41곳 가운데 산업부 산하기관은 12곳에 달한다. 한수원 부채는 지난해 말 24조7000억원에 달해 부채비율이 121%까지 치솟아 있다. 경영 상태가 너무 악화돼 부채비율은 내년 말 165%까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낙하산 인사가 통제되고, 책임경영이 이뤄졌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산하기관 33곳을 거느린 국토교통부에서도 해마다 낙하산 인사 잔치가 벌어진다. 국토부에서 산하기관으로 옮기는 4급 이상 퇴직공무원은 해마다 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최근 5년간 자리를 옮긴 104명을 분석한 결과 임원 자리를 꿰차는 것은 보통이고, 회장·이사장·원장도 수두룩하다. 이 정도 직책이면 연봉 1억원은 기본이고 대형 기관에선 2억원을 넘는 곳도 드물지 않다.

 이같이 퇴직 관료들이 으레 요직을 독식하는 구조에서는 주무부처와 산하기관은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자리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재는 게 편’이란 말처럼 전관예우가 뒤따른다. ‘낙하산 인사권’을 휘두르는 소관부처로선 각종 국책사업에 공공기관을 동원하기도 편해진다. 결국 공공기관은 속으로 골병이 든다. 느슨한 감독이 거듭되면서 2007년 말 249조3000억원이던 공공기관 부채는 MB정부 5년간 2배인 493조원으로 불어났다. 국가 차원의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원장은 “거듭된 낙하산 인사로 주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상태가 되니까 공기업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처럼 주무부처들이 산하기관 감독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감독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공공기관 견제 수단으로 경영평가가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해마다 실시하는 경영평가에서 295개 공공기관 가운데 공기업·준정부기관을 제외한 178개 기타 공공기관은 아예 평가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기존 평가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 6월 발표된 ‘2012년 경영실적 평가’에 따르면 MB정부에서 부채가 602% 증가한 수자원공사는 B등급을 받았다. 최고 등급 S가 한 곳도 없고 A등급도 5곳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우등생’에 가까운 평가다. 빚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가스공사·철도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C등급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295개 공공기관 중 지난해 순이익을 내지 못한 104곳의 기관장이 약 30억원의 성과급을 챙겨간 사실도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공기업들은 경영평가를 조직적으로 무력화시킨다. 매년 평가 철이 되면 7~10명의 전담 직원을 두고, 컨설팅 업체로부터 자문을 받으며 좋은 점수를 받는 일에 매진한다. 한 컨설팅 전문가는 “모범답안에 맞추면 한 등급 정도는 금세 올라간다”고 말했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은 2011년 최하위 E에서 지난해 A로 등급이 수직상승하기도 했다.

 평가단 구성 방식을 보면 평가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해마다 교수·회계사들이 평가에 참여하지만 건설·교통·금융 등 공기업의 실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수박 겉핥기식 평가가 되기 일쑤다. 계량평가가 50~60%를 차지하지만 실제 점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별도로 구성된 평가단이 수행하는 비계량평가여서 철저한 평가가 어렵다.

◆ 특별취재팀=김동호·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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