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위로가 되고 때론 죽비가 되고 시가 있어 청춘은 따뜻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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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다행이야, 너를 사랑해서
정강현 지음, 시와
222쪽, 1만4000원

꽃씨가 내려앉았다고 모든 땅에서 꽃이 피는 건 아니다. 뿌리를 내리고 본연의 색과 향을 뿜어낼 때까지 품어줄 품 넓은 땅이 있어야 꽃은 핀다. 문학기자였던 저자가 읽어주는 46편의 시가 제 각각의 꽃을 피워낸 이 책은 그렇게 촉촉하며 따스한 땅이다.

 시가 피어나기에 우리가 사는 오늘은 너무나 척박하다. 투입이 곧바로 산출로 이어져야 하고, 분초를 쪼개며 종종거리는 이 시대에 일상의 틈을 비집기에 시는 무력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르다. 시인이 뿌린 꽃씨가 섬세하고 예민한 저자의 손길에 와 닿으며 시는 마음결을 흔들고,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늦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시는 쓸모 없는 짓입니다’로 시작되는 도발적인 첫 문장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목적과 계산이 난무하는 삶이란 전장에서 시는 ‘쓸모 없음’으로 인해 쓸모 있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흔들리는 청춘에 시가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이 책이 시에 대한 많은 에세이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여기다. 저자는 시의 ‘청춘 유용론’을 설파한다.

 안온한 삶을 추구하는 청춘에게는 시가 죽비다. ‘누구나 다니는 길을 다니고/부자들보다 더 많이 돈을 생각하고 있어요/살아 있는데 살아 있지 않아요/헌옷을 입고/몸만 끌고 다닙니다/화를 내며 생을 소모하고 있답니다/몇가지 물건을 갖추기 위해/실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어요’(문정희 ‘요즘 뭐하세요?’)라는 구절은 모험심과 열정을 상실한 젊음에 던지는 경고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춘을 달래는 데도 시는 제격이다. 속수무책인 사랑의 속성은 ‘침 한번 삼키는 소리가/그리 클 줄이야!//설산 무너진다, 도망쳐야겠다’(윤제림 ‘사랑 그 눈사태’)란 시를 빌려 설명했고, 한 사람만을 향한 순정을 말하며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마음/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김선우 ‘꽃, 이라는 유심론’)이란 구절을 인용했다.

 저자가 골라낸 시를 따라 읽다 보면, 일상의 가쁜 숨을 고르게 된다. 잠시 멈출 수 있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 시는 충분히 쓸모 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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