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제주 우도에서 일본 미야케지마까지 굽이치는 역사 … 보듬고 화해하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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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검은 모래
구소은 지음
은행나무, 344쪽
1만3000원

하프와 쿼터. 재일동포에게 이 단어는 삶을 가르는 일종의 금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면 하프(반쪽 일본인), 그 재일조선인 2세와 일본인이 결혼해 낳았으면 쿼터(4분의 1쪽 한국인)다. 쿼터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하프는 철저히 내쳐지는 곳, 일본에서 한국인 혈통으로 살아간다는 건 단순한 혼혈의 문제가 아니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부터 해방과 4·3, 6·25를 거쳐 현재까지 100여 년에 걸쳐 한반도와 일본을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 『검은 모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사람들 이야기이자 그들을 통해 본 한·일 관계의 축소판이다.

제주 우도에서 일본 화산섬 미야케지마로 출가(出家) 물질을 나간 잠녀(潛女) 4대가 겪는 한 세기는 핏줄에 얽힌 정체성을 품고 민족차별의 혹독함에 신음해야 하는 오욕의 세월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해금, 해금의 아들 켄과 일본인 사이에서 출생한 손녀 미유를 중심으로 한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가 짧고 속도감 있는 서술로 독자를 소설 속으로 잠기게 만든다. 할머니가 남긴 카페 ‘아리수’를 이어받아 섬에 정착하는 미유는 통과의례를 잘 견뎌낼까.

지난해 3월 제주도가 평화와 인권, 진실과 화해,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내걸고 공모한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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