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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선언」과 아시아의 새 좌표|정담「닉슨 북경 8일」의 파장…우리의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참석자>
박준규 의원(공화·외무위)
이철승 의원(신민·국방위)
이호재 교수(고대·국제정치)
기록정리=정치부(조남조, 이제훈, 고흥길 기자)
때와 장소=2윌28일 본사 회의실
미-중공은 l주간의 회담 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긴장완화와 공존을 대전제로 하여 미-중공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는 합의를 담고 있다. 이에 곁들여 이례적으로 입장이 다르면 다른 그대로 중공주변의 광범한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로선 성명에서 나타난 상황보다는 장막 뒤에 가려져 있는 대화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닉슨 스스로의 평가대로『세상이 달라진 주일』이후 아시아의 새 정치질서 특히 새 질서가 몰고 올 한반도와 그 주변의 변화를 짚어보며 우리의 외교적 과제를 정리한다. <편집자 주>
▲이 호=미-중공 회담은 공동성명 뒤에 가려진 많은 대화를 예상해야겠지만 우선 성명만을 가지고 얘기를 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이번 성명에서 가장 분명히 밝혀진 것은 첫째 대만문제의 해결이라고 보겠습니다. 성명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인 문제에까지 진전될 수 있었던 점도 바로 대만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석에서 연유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실질적인 합의는 성명에선 찾아볼 수는 없지만 서로의 다른 입장을 강조해서 밝혔다는 점에서 두 나라가 모두 주변국가 관계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점입니다.
셋째로 성명은 평화공존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한국문제도 두개의 한국을 일단 고정화한다는 전제아래 현상유지를 밀고 가겠다는 두 나라 정부의 속셈을 재차 확인했다고 보겠습니다.
▲이철=성명만으로 본다면 대만문제의 해결이나 평화 5원칙의 수락은 확실히 미국의 지나친 양보라 하겠습니다. 다만 미 합의 사항에 대한 계속 논의의 여운을 남기고있어 성명에 나타난 단편적인 성과보다는 장래에 대한 해결의 가능성을 터놓았다는 점에서 긴장완화의 면에서 교량을 가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주변국 문제 묵계 있을 지도>
▲박=두 분이 지적했지만 의전절차도 포함해서 미국은 필요 이상의 저자세를 취했습니다. 또 어떤 의미에선 합의된 것 보다 오히려 합의 안된 것을 더욱 강조, 나열함으로써 국제여론을 호도 시킨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닉슨의 방문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선전 면에서 미국과 중공은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중공은 국제적 지위를 강화시켰고, 미국도 국제정치상의 행동반경을 넓혔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이 어떤 세력권의 형성이나 강대국의 흥정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그런 문제가 논의됐다는 자체가 이미 그것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에 약소국가의 이해관계의 조정이 보다 신속히 처리될 수 있다는 전주곡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철=공동성명에 나타난 것만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중공은 이른바 김일성의 평화 8개항에다 언커크 해체까지 곁들여 지지하고 나섰으나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점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남-북간의 대화를 지지하는 정도였습니다.
▲박=성명에선 미-중공간의 상위 되는 의견을 많이 나열했지만 두 나라는 극동문제에 이해를 접근시키지 않았나 보여집니다. 두 나라사이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대만문제가 중공에 만족스럽게 되었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패권을 잡지 않겠다는 의도를 중공에 설득한 효과를 보았을 것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문제에 합의한 점을 볼 때 미국과 중공이 극히 자유스럽고 융통성을 가지는 문호를 개방한 것이 아닐까요.
한반도에 관해 미국이 소극 적이었습니다만 미국 입장에서는 중공을 손잡을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 구주를 포함한 5대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요. 미국이 중공과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중공이 국제적인 게임 룰을 지킬 수 있는 입장에 물어간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할 것입니다.
▲이 호=두 분은 우리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만 미-중공이 다같이 데탕트를 유도하는 방향이라면 한반도에도 데탕트가 올 것이고 그렇게되면 우리도 희생은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강대국 정치에 의한 피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쉽습니다만 이번 두 나라 회담이 반드시 약소국의 희생을 수반할 것이라는 우려 쪽이 더 심각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미-소 양극체제는 붕괴>
어떻든 미-중공간의 관계개선은 양극체제의 붕괴를 실감 있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런 국제정치질서의 변화가 아시아에선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박=미국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강경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이 결코 군국주의 국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공동성명은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데 미국이『일본에 최고가치를 부여한다』는 문구를 삽입할 수 있었던 것도 중공 측이 양해한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즉 중공은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는 게 좋다는 것을 양해한 것이지요.
사실 일본은 극으로서의 힘의 단위가 되기는 요원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극으로서의 의지가 없고 핵 이빨을 갖추고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경제대국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미국에 의존하는 구조 아닙니까.
내가보기엔 아시아의 정치질서는 중공-미국-소련의 3극 체제에 의해 전개되며 일본은 협찬 자에 불과합니다.
북괴의 대외노선의 변천엔 중공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따라서 미-중공의 이번 회담 결과가 새 아시아 질서형성에 큰 흐름을 유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본도 하나의「극」으로>
▲이 호=박 의원의 말씀엔 견해를 달리 합니다. 아시아의 힘의 질서는 중공-일본-소련이 3극 구조가 되고 미국은 오히려 균형 자(balancer) 역할을 할 것입니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도 느낀 일이지만 아시아의 국제정치 상황은 일본이 하나의 극으로서 역할 하도록 조성되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후퇴하면 그 진공을 일본이 메워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중국주변의 아시아로부터 후퇴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철=현재의 단계에서 보면 박 의원의 견해에 동조합니다만 장래문제를 놓고 보면 이교수의 말씀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은 상황이 요구하면 핵무장을 할 것이고 군비를 가속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다고 봐야지요. 따라서 아시아는 일본을 포함한 4극 체제가 되리라 봅니다.
▲박=국력+의지가 파워랄 수 있는데 일본은 의지가 없습니다. 일본은 4차 군비계획이 끝나는 76년에 가서도 타국 분쟁에 개입할 힘을 갖지 못하며 영도 국으로서 사명감을 같고 있지 못합니다.
일본은 미국의 힘에 의존하며 미국을 통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편 아닙니까.
사실 미국은 일본이 아시아 세력의 한 극으로서 등장할 것을 바라고 있고 소련도 일본이 중공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강화될 것을 원해서 요즘 시베리아 개발이다 하며 일본에 열심히 접근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 호=아까도 말씀했지만 박 의원께서는 일본을 과소평가하고 계시지 않은가 합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중공을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데 우선 경제적으로 중공은 약합니다. 단지 8억 인구의 인력과 국토를 무섭게 보는 가설(assumption)이 잘못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특히 소련과도 대립한 지금.
그러나 일본은 방대한 경제력을 군 력 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 아닙니까.

<한반도, 미-중공 절충지역>
▲이철=일본이 극의 세력으로 등장할 저력은 분명히 지니고 있다고 보며 주은래가 일본을 경계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겠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김일성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그 어느 것이든 이런 새로운 질서가 분쟁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박=미국이 아시아 분쟁지역으로부터 점차 철수하는데 있어 중공도 협조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호=공동성명에 나타난 것만 보면 한반도를 미-중공 양국의 절충지역으로 보고 있지 않나 여겨지는데 긴장완화의 데탕트를 추구한다면 그것도 절충지역의 범주에서 추구할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이철=태국·월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는 감소 일 로에 있는데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얼마만한 깊이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나 를 파악하는 일이 우리에게 시급한 일입니다.
중공은 분명히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에 더욱 예민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는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약점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은 한국문제를 소홀히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회담결과를 전반적 아시아 평화를 위해 긍정적 전진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한 주체적이고 치밀한 대안을 빨리 마련해야 될 줄 압니다.
▲박=미-중공 수뇌의 회담서 미국이 우리측의 우월한 입장을 양보한 것이 유감이지만 두 나라의 결정사항을 극동정세를 안정화시키는 요소로 이용하는 대안을 우리가 마련해야지요.
우리가 외교·정치·경제·군사 면에서 상대적 우위성을 유지, 발전시키고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가 유리하게 국제정세를 유도해야 될 것입니다.
다만 미-중공의 접근은 일본과 중공의 접근을 촉진하는 자극이 되고있습니다. 이런 추세에서 중공진출에 편승한 북괴의 일본진출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환기 유도방향 정해야>
일본-북괴 접촉을 환영할 바는 아니지만 신경질적으로 반발하는 것도 곤란할 것입니다. 대결시대의 사고방식보다는 힘의 양성이 중요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일본-북괴간의 관계개선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남-북한 동시가입도 저지하는 한편 대화를 통해 남-북간의 긴장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호=미-중공의 관계개선 영향은 장기와 단기로 구분해서 전망할 수 있겠지요.
5년쯤의 뒤를 내다본다면 동남아 각국이 소련과 접근을 시도하는 것처럼 우리도 중공이나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외교정책을 설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되겠지요. 분단상태의 안정 내지 개선이 없으면 일반추세가 데탕트 방향이라도 남북관계는 대결관계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국제정치를 1극 체제, 양극체제, 다극체제로 구분하고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전환할 때는 국제정치학에선 해방 기라고 합니다만 이런 해방 기엔 국가이익에서 체제의 변화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하며 따라서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봅니다. 불확실한 기회가 안겨졌고 결과는 1차 적으로 우리 스스로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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