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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해저왕국의 꿈」에 바친 40년|서울 내수 동 한의사 정순옥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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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구실도 없다. 재대로 교육받은 과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43년을 해양개발에 인생을 몽땅 바쳤다.
『아름다운 바다 속에 물고기처럼 살며 해저왕국을 건설할 수 없을까?』올해로 회갑을 맞은 정순옥씨(61·서울종로구 내수 동210의1) 는 이 꿈을 보성고보 재학시절의 물상시간 때부터 키워왔다.
반세기에 걸친 집념이 해저개발의 지름길인 수중호흡기를 발명하는데 성공,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발명특허까지 얻었다.
43년간을 그야말로 끝없는 투쟁이듯 살아온 정씨.
정씨의 직업은 한의사. 그러나 이 직업은 최근 20년간 연구비 조달방법의 방편이 돼왔을 뿐, 그전 23년간은 심해잠수기발명에 미쳐 한번도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 때 까진 선친의 유산이 있어 그럭저럭 연구를 할 수 있었으나 유산이 거의 바닥날 무렵 당국의 허가를 받고 시작한 것이 안과와 폐질 환의 한약을 짓는 한의가 됐던 것. 그것도 4대째 한의 업을 해온 선친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 한의 업이 번창할 리 없다.
『새가 나무에 앉았어도 마음은 조 밭에 있다』는 격 때문.
새벽 5시쯤이면 일어나 한 시간쯤 잠수기 연구에 대한 명상에 잠겼다가 6시쯤 손수 밥을 짓는다. 내수 동 뒷골목 막다른집 210의1번지.
그의 본집은 전북 이리 시 남중 동에 있으나 큰아들 채 동씨(30·서 교 국민학교 교사) 와 차남 경 동 군(23·연대공대 3년) 막내아들 원동 군(17·마포고 1년)등 아들 3형제와 함께 34만원에 방 두 간을 전세 얻어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잠수기 연구에 쓰기 위해 한약방 겸해서 빌린 것. 연구에 미쳐 일본을 돌아다니느라고 당시로는 보기 드문 30세에 김영순 여사(57)와 만혼을 했다.
부인 김 여사는 군정당시 대법원장이던 고 김용무씨의 딸. 숙명을 다닌 신여성으로 어쩌다보니 당시로는 26세 노처녀가 돼 있다가 정씨와 중매 결혼했다.
지금 이리에서 논 1천5백여 평으로 군산교대에 다니는 딸 유 동양(20)과 함께 농사지어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정씨는 부인에게 고생을 시키는 것이 미안하여 서울서 손수 밥을 짓는다 했다. 아침 7시 반쯤 조반을 마치면 아들 3형제가 각기 학교에 나가고 약방에 손님이 든다. 하도 구석진데 들어앉아 있다보니 대부분 단골 몇이 찾아올 뿐이고 약방에 전심전력을 하지 않으니 많은 손님도 없다. 환자의 진맥을 짚어보고 약을 지어 돌려보내면 상오11시쯤. 정씨는 그때부터 예의 잠수기연구에 들어간다.
우선 뚝섬에 있은 친지인 방씨 철공소로 향한다. 철갑잠수기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철공소엔 벌써 10년을 드나들었다. 다음엔 청계천3가 전기기구상회를 훑어 다니는 것이다. 정씨가 발명했다는 해저잠수기는 이 청계천 전기재료상회를 다니며 맞춘 전기공기조절기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그 다음코스는 갈 월동 수도재료상회와 국립도서관.
국립도서관에는 몇 년을 다니면서 해양학과 해양물리학에 대한 참고서적을 뒤져봤으나 별로 신통한 것이 없었다고 불평했다. 우리 나라 과학의 후진성은 문헌과 자료부족이 가장 큰 요인의 하나라고 촌평.
그래서 정씨는 4차례나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의 여러 도서관을 둘러 자료를 뽑았다.
이미 44년에 일본발명특허 164027호로 수중호흡기에 대한 특허를 얻었으나 보다 완벽한 수중호흡기 (잠수기) 제작에 20년을 더 바친 셈이다. 일본에는 해방 전에 2번 들어가 약5년간 잠수기발명에 몰두했었고 해방 뒤에 2번 다녀왔다.
해방 뒤에 일본에 들어갈 때는 선원을 가장, 밀입국했다가 출입국관리 청에서 7일간이나 연금 당했지만 「오오무라」수용소로 끌려가 콩밥을 먹지 않은 것도 순전히 잠수기덕분이라 했다.
정씨가 발명한 심해잠수기는 일반공기 펌프 식이 아니라 혈액순환을 이용한 평 기압수중호흡원리를 이용, 수중 70m 이하에서도 이 잠수기만 달고 들어가면 육지서와 똑같이 호흡장해를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
보통잠수기는 20m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외부에서 수압에 견뎌낼 수 있는 그 기압의 공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작업시간은 겨우 20∼30분 정도. 그래서 작업능률도 오르지 않고 위험하다는 것.
정씨는 이 잠수기를 실험하러 57년에 한강, 58년에 인천 앞 바다, 59년 여수 앞 바다, 69년 전남흑산도 앞 바다, 70년 11월24일 제주 앞 바다(70년 11월25일자 중앙일보 보도)에서 돼지와 사람을 넣고 공개실험을 해 한강서만 너트가 잘못되어 실패했을 뿐 모두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그러나 물 속 10m마다 1기압씩 가중되는 무서운 파괴력의 수압을 어떻게 견뎌내겠느냐는 걸 실험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니 한심하다며 누가 뭐라 해도 그 나름대로의 잠수기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신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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