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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복잡했던 여자관계서 꽃핀 음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폴란드 대지주의 딸로 러시아 왕족인 비트겐슈타인 왕자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으나 성격 차이로 별거 중인 공작부인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로 하여금 리사이틀조차 완전히 포기하고 결혼허가를 받기 위해 로마로 향하게 했다. 공작부인의 남편 비트겐슈타인이 이혼에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마 교황의 특별허가를 받기 위해 택한 로마 행은 무려 14년 만에 교황의 윤허로 이어졌으나 이혼한 전 남편의 집요한 방해로 막상 결혼식 당일에 갑자기 허가가 취소됐다.

3년 후 비트겐슈타인의 사망으로 별도의 허락 없이도 결혼이 가능해졌음에도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고 각자 수도자의 길을 걷는다. 54세가 되던 해에 리스트는 로마 가톨릭의 2급 신품을 받아 수사가 되었고 공작부인은 마치 수녀와 같은 여생을 보냈는데 리스트가 죽자 그녀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세상에 이보다 애절한 사랑이 또 있을까.

한편 이전에 다구 백작부인과의 사랑의 도피는 리스트로 하여금 그동안 몰랐던 이국의 정취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빚어내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순례의 해’이다.

전 4집 총 26곡으로 구성된 이 음악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풍경을 보고 느낌을 악보로 옮긴 것과 단테의 신곡 같은 소설을 읽고 느낀 감흥 등을 악보로 표현한 연작들인데 곡 하나하나가 독주곡처럼 연주된다. 다구 부인이라는 연상의 연인과의 사랑의 도피 행각이 없었더라면 태어나지 않았을 이 곡은 어쩌면 그에게는 다구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세 자식보다 소중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열 두 살 때 스승인 체르니의 손에 이끌려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칭찬을 들었던 리스트는 베토벤 사후에 그를 위한 기념사업에 관심을 쏟는다.

1845년 마침내 본에서 열린 베토벤 기념상 제막식에 리스트는 바바리아 국왕의 연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물의를 일으켰으나 이 자리에서도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를 연주하는 뻔뻔함을 보인다.

공작부인과의 결혼허가 취득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리사이틀을 중단한 리스트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바이마르에 머무는 동안 ‘초절기교 연습곡’ ‘헝가리 광시곡’ 등 주옥 같은 작품들을 작곡했다. 리스트가 열 여섯 살 때 사망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여자들을 조심하라’고 유언했지만 그의 인생은 평생 여자들로 인해 영욕을 거듭했다.

그가 피아노를 가르쳤던 한 살 아래 카롤린 드 생 클릭은 리스트의 첫사랑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리스트에게 자기 딸에게 접근금지를 명하였고 리스트는 실연의 후유증을 무려 2년이나 앓는다. 수개월간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한 신문은 ‘프란츠 리스트 1811년 라이딩에서 태어나 1828년 파리에서 죽다.’라고 부고란에 싣기까지 했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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