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르니히」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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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외신에서 「19세기식 외교」라는 말을 보고 흥미 깊었다. 「하버드」대의 동양사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닉슨」대통령의 북경방문을 두고 한 말이다. 좀더 거슬러「키신저」의 비밀외교를 비꼰 말인 것 같다.
19세기의 외교라면 「빈」회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회의는 춤춘다』는 유명한 풍자를 남겨놓은 회의 말이다. 이 회의는 프랑스」혁명과 그에 이은 20여 년간의 「나폴레옹」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승국인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프로이센」이 주도했다.
그 당시(1814년9월) 회의는 열렸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외교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턱시도」와「프록 코트」를 걸치고「이브닝·드레스」로 성장을 한 부인과 함께 무도회에 나가는 것뿐이었다. 『하루 4분의3을 「왈츠」와「댄스」로 보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매일같이 빈에선 음악회가 열리고, 때로는 수렵대회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유럽의 지도를 바꾸는 결과로 끝이 났다. 빈 회의의 스타플레이어였던 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재상)는 이미 공식회의가 열리기 전에 비밀협의를 맺었었다. 회의는 단순히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른바 약소국들의 운명은 그 춤추는 회의장에서가 아니고, 그 전에 장막의 뒤에서 흥정이 돼있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통치에서 「스웨덴」의 통치로 넘어가고,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로 넘겨주고, 영국은 지중해의 허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는「말타」를 차지하고, 「실론」과 「케이프」를 덤으로 받았다.
「러시아」황제가 「폴란드」의 국왕을 겸하는가 하면, 「프로이센」도 지도를 찢어 갖듯이 영토를 넓혔다. 「오스트리아」는 「네덜란드」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탈리아」의 일부지역을 갖고…. 이런 식이었다. 『제 국민이 경매되는 대담한 회의였다』는 당시의 비평은 고소를 자아낸다.
그 뒤 유럽은 이른바 빈 체제 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력이 균형으로 고착될 수는 없었다. 강국의 이해는 결국 부심이 심했으며, 그럴 때마다 세력이 부서지는 파문은 깊고 넓었다.
라이샤워 교수는 바로 그 비밀외교방식에 의한 강국의 세력균형이 갖고있는 허구와 모순을 지적하는 것 같다. 이점에선 전 국무차관이었던 「조지·불」씨도 같은 견해이다. 그는 훨씬 현실적으로 말한다. 정상회담이니 비밀회담은 저널리스틱한 효과 외에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우기나 「왕조 정치풍」의 정상외교는 가식이기 쉽고, 또 즉흥적이기 쉽다는 경고를 하고있다.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세계의 「저널리즘」이 흥청거리고 있는 인상은 새삼 그런 느낌을 짙게 한다. 「19세기식 외교」의 재연은 관객의 처지에선 분명 재미없는 연극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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