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230>재·보궐선거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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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경희 기자

지난 10월 30일 재·보궐선거를 통해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화려하게 국회에 복귀했습니다. 경기 화성갑에서 62.7% 득표로 민주당 후보(29.2%)를 이기고 7선(選) 고지에 오른 거죠. 지난 4월 재·보선은 새누리당 김무성, 이완구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등원하는 발판 역할을 했습니다. 재·보선을 ‘작지만 강한 선거’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 정부 레임덕의 바로미터

1 1998년 4월 2일 대구시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18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다 이 선거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고, 당권에 이어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중앙포토]

재·보선은 야당에 유리하다는 게 공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역대 재·보선마다 정권 심판론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해 야당 쪽으로 표가 몰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죠. 원칙적으로 여야 모두 민심의 준엄한 평가를 받는다지만 통계적으론 ‘집권’ 여당의 무덤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토대로 1989년부터 올해까지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을 살펴보겠습니다. 101개 선거구에서 여당이 승리한 곳은 30곳, 야당이 승리한 곳은 71곳이나 됐습니다. 야당의 승률은 70.3%에 이릅니다. 덕성여대 조진만 교수(정치외교학)는 2009년 6월 발표한 논문 ‘민주화 이후 한국 재·보선의 투표율 결정요인 분석’에서 “여당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치적 비중이 떨어지는 재·보선에서 유권자들이 정부의 정책과 업무수행 등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서 회고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총선이나 대선에 비해 재·보선은 큰 정치적 부담이 없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현 정권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기 쉽다는 것이죠. 지난 2001년 이후 10년간 치러진 재·보선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민심이 어떻게 정부와 여당을 심판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정부 후반기인 2001년부터 2002년 사이 치러진 세 차례 국회의원 재·보선을 보겠습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2대 15로 완패했습니다. DJP연합(김대중·김종필 1997년 대선후보 단일화) 파기와 대통령 아들들의 부패 혐의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지요. 홍준표 현 경남지사는 2001년 10월 동대문을 재·보선에서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승리했습니다. 2002년 8월 재·보선에선 권영세 현 주중대사, 서병수 현 의원 등이 당선됐습니다.

# 진보·보수 정권 예외 없어

2 2011년 4월 2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텃밭이라 불리던 지역에서 승리해 당내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노무현정부는 집권 초부터 국정수행 지지도가 20∼30%대에 머물며 고전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등 노무현식 개혁정책 드라이브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재·보선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치러진 여섯 차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모든 지역에서 패배를 맛봐야 했습니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22석 가운데 16석을 싹쓸이한 거죠. 보수정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명박정부는 임기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규모 촛불 시위도 잇따랐죠. 임기 2년차인 2009년 4월 29일 다섯 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1석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출범 8개월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올해 두 번의 재·보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역대 재·보선 경향과는 좀 달랐습니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서울 노원병을 제외한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에서 승리한 데 이어 지난 10월 선거에서도 승리한 겁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까지 이 기세가 이어질지가 주목됩니다.

# 거물급 정치인 등용문으로

3 2013년 4월 20일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안철수 의원. 18대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의원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한 뒤 재·보선을 통해 19대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중앙포토]

 정치권에서 큰 비중을 가진 인사들 가운데는 재·보선을 통해 정치 무대에 등장하거나 재·보선을 통해 정치력의 질적 전환을 꾀한 이들이 꽤 있습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입니다. 당시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박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운 때에 정치에 입문하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18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던 박 대통령을 재·보선 후보로 공천하고 정계에 입문시키는 과정에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서청원 의원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10월 경기 화성갑 재·보선에서 상대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고 7선에 오른 서청원 의원은 친박계 좌장 격으로 2002년 한나라당 대표까지 지낸 정치 지도자입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패하고, 이듬해 공천에서 친박 후보들이 외면받자 ‘친박연대’를 만들어 총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공천 헌금 수수 혐의로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른 뒤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재·보선에 출마해 정계로 복귀한 거죠. 서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유력한 차기 당권 주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새누리당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김무성 의원 역시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 했습니다. 최근 근현대사역사교실, 퓨처라이프포럼, 통일연구모임(준비중) 등 국회내 모임을 만들어 활발한 활등을 하고 있고,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김무성 의원과 함께 재·보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안철수 의원도 야권발 정계개편의 핵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전 신당 창당 여부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죠. 2011년 경기 성남 분당을 재·보선에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출마해 승리했습니다. 민주당 대표로서, 당시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분당을에 나와 배수진을 친 뒤 얻은 승리입니다. 민주당 내 ‘손학규 리더십’과 지분을 확보하고, 대권 후보로 거론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98년 서울 종로 재·보선에서 두 번째 배지를 달았고,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 정동영 전 의원,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재오 의원 등 수많은 중진 정치인들이 재·보선을 발판 삼아 국회에 복귀한 전례가 있습니다.

# 재선거와 보궐선거

4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10월 30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부인 이선화씨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 의원은 이날 62.7%를 득표해 민주당 후보(29.2%)를 33.5%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7선(選) 고지에 올랐다. [중앙포토]

 통상 재·보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재선거와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재선거는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선거과정에서 무효사유가 발생해 당선이 무효된 경우 치러지는 선거입니다. 공직선거법상 당선 무효확정 판결이 내려지거나, 당선인이 임기가 시작되기 전 사망 혹은 사퇴했을 경우, 선거 소송이 무효로 된 때, 선거 결과 당선인이 없을 때 재선거가 실시되는 거죠. 보궐선거는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고 나서 그 직위를 상실한 경우 치러집니다. 범법 행위로 인한 유죄판결로 피선거권을 상실하거나 사망·사퇴 등의 사유로 궐석되었을 때 그 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실시한다고 해서 보궐선거라 부릅니다.

# 재선거로 이어지는 당선무효

 선거법상 당선무효가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선거비용의 초과지출입니다. 선거사무장 또는 선거사무소의 회계책임자가 선거법에 따른 법정선거비용 제한액의 0.5% 이상을 초과지출한 이유로 징역형이나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그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로 합니다. 둘째, 당선인의 회계책임자가 선거비용 수입과 지출보고서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 기재해 징역형 또는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때입니다. 그 후보자(대통령후보자, 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 및 비례대표시·도의원후보자는 제외)의 당선은 무효가 됩니다. 다음으론, 당선인이 당해 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도 그 당선은 무효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선거사무장이나 선거사무소 회계책임자, 후보자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가 당해 선거에서 기부행위 위반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그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입니다. 이때도 대통령후보자, 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 및 비례대표시·도의원후보자는 이 선거법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사범의 경우 1심 재판은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안에 반드시 마쳐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당선무효 결정이 나면 향후 5년(벌금형) 또는 10년(징역형)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죠.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전년도 10월 1일부터 3월 31일 사이에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경우 4월중 마지막 수요일에, 4월 1일부터 9월 30일 사이에 확정된 경우 10월중 마지막 수요일에 실시해야 합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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