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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제선 고지 중턱서 「스타트」|미 대통령 선거 본 궤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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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부 백악관 당국은「닉슨」미국 대통령이 72년 대통령 선거에 재 출마할 뜻을 7일 공식 발표했다.
「닉슨」의「스케줄」은 원래 오는 14일쯤을 발표시기로 잡고 있었으니 예상보다 다소 이른 셈이다.
「뉴햄프셔」예선에 자기 이름을 등록하겠다는 뜻을 그곳의 자파 참모「레인·듀넬」전 지사에게 서한으로 통보함으로써 「닉슨」은 이제 재선고지를 향해 칼을 뽑은 것이다.
그 칼은 과연 실력일까, 녹슨 칼일까. 재작년, 그러니까 70년 말의 평가에 따른다면 그건 분명 녹슨 칼이었다.
녹슨 칼을 잡은「닉슨」이라는 사나이가「인플레」와 실업자와 중간 선거에서의 패배라는 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처량한 달밤』이었다.
그러나 꼭 1년만에 사태는 백80도로 바뀌고 말았다.
오늘의「닉슨」은「카르타고」를 제압한 「로마」의 맹장「스키피오」만큼이나 당당하다.
「1기 대통령」이란 혹평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가장 유력하고 강한 차기 대통령 감이라는 소리가 내외에 자자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도 이 성공의 비결은「닉슨」자신의「사람됨」에 있다고 봐야한다.
「닉슨」은 본래가 이념이나 원칙을 죽자살자 고수하는「신조의 인간」이 아니다. 그는 언젠가 월남 문제와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이 말은「닉슨」이란 사람의「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확한 자화상이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하이든」씨도 되었다가「지킬」박사도 되는 것. 백장미를 좋아한다고 말하다가도 필요한 경우엔 재빨리「칸나」를 좋아한다고 고쳐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닉슨」이다.
요는 이 변덕이「닉슨」을 살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한햇 동안 그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큼 요란스런 변덕을 부려 자신의 정치 생명을 튼튼히 연장시켰다.
원래 그는 지독한 극우보수의 반공주의자요, 냉전 투사였다. 경제적으로는 자유 무역과 철저한 자유 방임적인 시장 경제 원칙을 주장하던 공화당 정통파였다. 그러던 그가 작년 여름 그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표변해 버리고 말았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내가 처음으로 북경엘 가겠다. 「모스크바」에도 가겠다. 물가와 임금을 동결하라. 『세금을 덜 받을 테니』사업가는 마음놓곤 투자해라. 일본 등 외국의 상품(특히 섬유류)의 수입엔 세금을 많이 과해서 미국업자를 보호해 주겠다. 월남에서 군대를 빼내겠다. 「달러」를 절하, 미국만이 실속 없이 돈을 쓰지 않겠다. 일본·EEC도 이젠 돈을 좀 써서 미국의 부담을 덜어라.
그는 이제 미국은 물론 세계 굴지의 해빙 정치가로 등장했다. 과연 놀라운 변신이다.
중공방문, 국제통화 조정, 무역 교섭, 소련과의 전략 무기 제조회담(SALT), 월남전 종결책, 「베를린」이 문제 해결이라는 외교적 업적에다 그는 물가·임금 동결책 등「인플레」대책과 세제 면으로부터의 경기 자구책, 후생 복지제도의 개혁, 연방·지방자치제의 수입분여제 제안 등 내 정면의 치적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며 선거에 임할 자세다.
그러나 그의 실책도 적지는 않다. 우선 대만의「유엔」추방을 못 막았고 월맹의 억류된 미군 포로의 석방을 매듭짓지 못했다. 옛날 우방들의 머리를 넘어 거래된 중공 방문이나「달러」파동 등 신 경제 정책은『이들 사이에 미국이 과연 우리 우방이냐?』를 회의하는 불신감을 심어 놓았다.
「라오스」작전과 「캄보디아」작전도 별로 커다란 성공은 아니었고 더구나 인·「파」전에서의 외교적 패배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남아에서는 미국이 도대체 발언권이 없어진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변신술에 의지한 정략가「닉슨」의 재선 공산은 매우 유리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닉슨」을 자신과 미국의 전통적인 원칙을 내버리고 새로운 원칙 평가 절하된 미국으로 전향함으로써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건졌다.
작년 말의「닉슨」-「히든」, 「닉슨」-「퐁피두」회담과 이번의「닉슨」-좌등 회담에 이어 2, 3월에는 모택동·주은래·「브레즈네프」와 화려한 연쇄회담을 가진 다음 그 눈부신 업적을 등에 지고 3월초의「뉴햄프셔」예선에 개선 나팔을 불며 등장한다는 것이 양양한 승리의「시나리오」는 분명히「머스키」「험프리」「맥거번」「에드워드·케네디」「린지」 등 민주당 후보 감이나 공화당 경쟁자들에게 다같이 무시 못 할 힘이 아닐 수 없다. 죽은 대통령이나 살아있는 다른 후보 감들 가운데「닉슨」만한 외교적 변혁을 가져온 사람이 도대체 없는 것이다.
쟁점은 고작해야 실업문제. 외치는 난공 불락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오는 초봄의 북경·「모스크바」나들이가 얼마만큼의 자랑할 만한 선물 보따리를 가져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닉슨」의 정치 생명이 주은래와「브레즈네프」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요설일까. <유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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