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세계 일류상품이라도 한국 벤처 생태계선 생존 어렵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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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01면

경북 경산시 사동에 있는 ㈜일심글로발. 지난해 세계 최초의 유리창 청소로봇인 윈도로(WINDORO·사진)를 시장에 내놓았다. 정부의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 생산업체로 선정된 이 회사는 지금 텅텅 비어 있다. 6일 오후 분주해야 할 생산라인엔 각종 부품만 어지럽게 놓여 있다. 회사를 지키는 이는 로봇사업부 김현윤(32) 주임과 K 수석연구원(33) 둘뿐이었다. 이들은 회사가 지난 6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월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김 주임은 “지난 4년간 로봇 개발에 쏟은 애정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 수는 한때 40명을 넘었지만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 지금은 4명뿐이다.

유리창 청소로봇 ‘윈도로’ 사례로 본 벤처기업의 현실

이 회사 류만현(43) 대표는 지난 2일부터 보름 일정으로 독일·포르투갈을 돌고 있다. 기업회생안 마련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리스본에 있는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투자를 유치하거나 주문을 받기 위해서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시 살아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며 “법정관리에 들어가기까지 내 잘못이 제일 크지만 투자만 받을 수 있었어도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텐데…”라며 답답해했다. 첨단제품이던 ‘윈도로’는 한때 세계 일류상품으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그의 눈물이 됐다.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 독일 주재원으로 뛰었던 그는 2005년 초극세사 클리너를 유럽에 수출하는 이 회사를 세우고 독립했다. 2009년엔 매출이 100억원에 육박하며 한동안 잘나갔다고 한다.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인증을 받고 2009년엔 벤처기업 확인도 받았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초극세사 제품이 나오면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 활로를 찾아야 했다. 해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졌던 ‘유리창 청소로봇’을 그는 떠올렸다. 첨단제품으로 새 시장을 만들어보겠다는 도전의식도 작용했다.

2009년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찾아가 개발을 의뢰했다. 개발기간 2년, 개발비용 7억원을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시장에 윈도로를 출시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직접 개발비용만 35억원이나 들었고, 금융비용을 포함한 직·간접 비용은 50억원에 달했다. 비용은 대부분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을 바탕으로 여러 은행에서 대출받아 마련했다.

그는 투자를 받으려고 아이디어·시제품·완성품 단계마다 수많은 벤처캐피털을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벤처캐피털에 벤처는 없고, 캐피털만 있었다”고 말했다. 윈도로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등에서 호평받으며 해외로부터 4000여 대(약 13억원 상당) 주문을 받은 데다 차세대 일류상품에도 선정됐다. ‘시장성·성장성·경쟁력을 볼 때 5년 내에 세계시장 점유율 5위 이내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서다. 하지만 이 모두가 회사 경영난을 돌이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돼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했다. 요즘엔 원자재가 부족해 대량 주문을 받을 엄두조차 못 낸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의 성공을 위해 벤처 육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벤처 생태계는 아직 취약하다. 벤처 생태계는 기술·인력·자금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로 이뤄져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투자·이익 회수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벤처기업들은 투자가 아니라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뒤 금융비용의 늪에 빠져 허덕인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2034개 벤처기업을 조사한 결과 ‘벤처캐피털사 투자유치 경험 없음’이 91.9%에 이른다. 창업 후 10년을 넘기는 회사도 드물다. 같은 조사에서 벤처기업의 평균 업력은 8.1년에 불과했다. 3년 이하가 26.3%, 4~10년이 44.2%로 전체의 70.5%를 차지한다.

▶ 5p에 계속, 관계기사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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