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분할 간이식 수술 세계 최고 명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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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18면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지난해 12월 일본 홋카이도 대학병원 의료진이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에게 SOS를 쳤다. 홋카이도 대학병원은 미국 피츠버그 대학병원에서 20여 년 근무하다 돌아온 이식수술의 세계적 대가 사토르 토도 교수가 있는 간이식 분야 일본 5대 병원 중 하나다. 병원 의료진은 “러시아에서 26세 청년이 알코올성 간경변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로 왔는데 맡아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환자는 덩치가 크지만 간을 제공하려는 어머니와 이모는 체격이 작아 간을 이식할 수 없으므로 2명의 간을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분할 이식수술’ 분야에서 베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청년은 한국에서 수술받고 기적적으로 삶을 건졌다.

베스트 닥터 ⑥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

이 교수는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환자의 간에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적 대가로 꼽힌다. 지금까지 3400여 명에게 생체 간이식을 시행했고 성공률은 97%에 이른다. 세계 최다 수술, 최고 성공률로 2008년 미국 ABC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국내 최초로 생체 간이식에 성공한 이래 굵직한 성과들을 연거푸 냈다. 99년에는 간의 우엽을 효과적으로 이식하는 ‘변형 우엽 이식술’을, 이듬해에는 2명의 성인에게서 간 일부를 떼어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2001년에는 살아 있는 두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혈액형과 상관없이 간을 이식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 교수는 5세 때 심장이 결핵균에 감염돼 일본 도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살아났고, 이 경험이 그를 의대로 이끌었다. 이 교수는 흉부외과를 선택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개원이 쉬운 외과에 들어갔다. 78년 스승인 고창순 교수의 권유에 따라 ‘당대의 칼잡이’ 민병철 신영병원 원장의 제자가 됐고 민 원장을 따라 83년 고대구로병원, 89년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 원장은 91년 이 교수를 불러 “간이식을 하라”며 매주 개 한두 마리씩을 실험용 동물로 사 줬다. 이 교수는 100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밤낮없이 동물실험을 한 뒤 첫 간이식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낙담할 여유가 없었다. 두 번 잇따라 수술일정을 잡았기 때문. 다행히 두 번째에서는 성공했다. 생체 간이식 때에도 일정을 연거푸 잡았다. 첫 환자는 2개월 더 살았지만 두 번째 환자는 12년을 생존했다.

그는 일과 환자에 묻혀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10여 년 동안 한 주에 최소 5번 12~20시간씩 수술하며 응급환자가 있으면 한밤에도 수술실로 향했다. 가족과의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했다. 98년 어머니가 대구 동생 집에 다니러 갔다가 갑자기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생명이 시급한 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날 밤 수술대로 향했다.

요즘에는 팀의 의사가 8명으로 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들이 팀을 이뤄 한 해 60여 명에게 뇌사자 간이식, 330여 명에게 생체 간이식을 한다. 생체 간이식은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 세밀한 수술을 해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700여 명에게 수술을 하는 셈이다. 이 교수는 매달 한 번씩 제자들에게 “항상 깨어 있어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환자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그의 삶이 그랬다. 덕분에 수많은 간경변증, 간암 환자가 새 삶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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