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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수 업계 실태 들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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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화재 수리기술자 자격증 대여 문제는 고질병이다. 업계에선 이런 사실을 수십 년간 감춰 왔으며 문화재청도 관리에 소극적 모습을 보여왔다. 국회나 시민단체에서 간간이 거론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문화재 수리 현장에 있는 두 사람을 만나 그 심각한 실태를 들어봤다. 한 사람은 수리기술업체 대표 C씨, 다른 사람은 현재 자격증을 임대하고 있는 K씨다. 본인의 요구로 실명은 표기하지 않았다.

 ◆영세업체들 난립=C씨는 “인건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리업체는 5000만~7000만원 정도에 설립할 만큼 영세하다. 자격증 소지자가 직접 사장이 돼 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매년 자격증 합격자 수만큼 회사가 새로 나온다. 하지만 일감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다. C씨는 “도급 형태로 운영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일감이 없어도 자격증 소유자를 의무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명의만 빌려온다. 이래서 자격증 대여가 횡행한다”고 말했다. 실제 수리 경력 여부도 따져보지 않는다. 단청수리자격증을 빌려준 사람 중에는 화가·대학강사·60대 주부까지 있었다. 이 60대 주부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한 번도 현장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분식회계도 성행=수리업체는 자격증 소지자에게 부장·과장 등의 직책을 주고 연봉 4000만~5000만원 정도를 지급한 것으로 서류상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자격증 대여자들에겐 1100만원~3000만원을 준다. 차액은 회사 자금으로 쓴다. C씨는 “당장 회사를 차려 일을 해야 하는데 자격증 소지자에게 줄 1300만원 정도 때문에 일을 못하고 문을 닫을 수 없어 돈을 준다”고 말했다.

 실제 수리공사 땐 자격증 소지자들을 써야 한다. 업계에선 전체 자격증 소지자 1500여 명 중에 10% 정도가 일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소수의 자격자들이 전국 문화재 수리공사를 전담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정식 월급을 줄 수도 없다. 그들도 여러 회사에 자격증을 대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C씨는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도 다 면허기술자지만 취업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공식적으로 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동원되는 것은 비공식 수법이다. 현금으로 직접 주거나 가족·배우자 등 일하지 않는 사람의 통장에 돈을 넣어준다.

 ◆대여료만으로 생계 유지=오랫동안 자격증을 빌려줬다는 K씨는 “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10년 가까이 자격증 대여로 생계를 유지했다”며 “자격증 임대로 돈을 벌고, 자신은 다른 업체 일을 하며 다시 돈을 버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K씨는 회사 간 자격 임대 실태도 고발했다. 그는 “일이 없는 회사는 일이 생긴 회사에 공사 기간 동안 기술자 명의를 빌려주고 1억짜리 공사에 40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명의 대여자의 동의 없이 회사들끼리 퇴사와 입사 처리를 서류상으로 한다. 회사들이 근로계약서와 통장계좌까지 알아서 관리한다. 그는 “자격증 보유자들끼리는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어도 서로 일면식도 없다”며 “업체 대표 입장에서도 명의 대여 사실이 외부에 흘러나가는 것을 우려해 회사에 소속된 대여자들끼리 알고 지내는 것을 꺼린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안성규·이영희·이승호 기자, 사진 박종근 기자, 김종록 문화융성위원·작가·객원기자, 김호석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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