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한」 이미지는 영원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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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귀신 잡는 해병』의 신화를 월남 「정글」에 남긴 청룡부대 제1진의 개선의 첫 쾌보는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3천만의 자랑인 대한해병대. 얼룩무늬 반짝이며 「정글」을 간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지는 귀신 잡는 그 기백 총칼에 담고.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는 3군의 앞장서서 청룡은 간다』 월남 제2의 항도 「다낭」 부둣가에는 「따이한」전우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수 천 한국 교포들이 태극기 물결 속에 주월 사령군 군악대의 합주에 발맞추어 선창자 없는『청룡의 노래』 합창을 끝없이 목청껏 불렀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동포애의 엄숙한 승화였다. 개선을 알리는 『음악의 갈매기』였다.
귀국선 「아프셔」호 함 갑판 위에 완전무장, 묵직한 배낭을 걸머지고 철모를 눌러쓴 청룡 용사들도 어느새 배 옆의 지휘자 없는 자연발생적인 합창단에 호흡을 맞추었다.
열대의 태양 볕에 검게 탄 해병들의 두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벅찬 감격의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다.
1백여 미·월·일 기자들도 완전히 환송군중의 일부가 되었다. 20대의 한 월남 여기자는 여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애정의 징표로 주는 곱게 접은 향수 내음 짙은 손수건을 갑판을 향해 던졌다. 털썩 주저앉은 앳된 이 여기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강인한 「베트남」여심이 양민의 마을을「베트콩」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얼룩무늬 사나이들』의 떠나는 뱃머리에서 그들이 보여준 자유수호를 위한 희생정신을 못 잊어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월남기자들의 안내를 맡았던 한 월남군 공보장교는 군인의 상징인 군모를 미련 없이 개선항로에 날려 장도를 축복해줬다. 『피로 맺은 한· 월 우의』는 마디마디 살아 있었다.
「다낭」시청 앞 광장에서 월남 제1군단장 「람」장군, 「다낭」시 의회의장 공동주최로 마련됐던 환송식에 나와있던 수천 월남시민들은 식을 마친 청룡장병들이 월남 LST에 승선, 맞은편 부두에 정박한 귀국선 「아프셔」호로 향할 때 손에 손을 흔들고 배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한 미국기자는 한국사람을 붙잡고 이상한 듯 물었다.
50여만의 대군과 하루 1억「달러」의 돈 꾸러미를 전비로 쏟아 넣은 미국의 군대가 똑같은 「다낭」항을 떠나 철수 길에 수없이 올랐어도 월남시민들의 환송의 흔적도 못 보았는데「따이한」이 간다고 병적일 만큼 자존심이 높은 월남사람들이 저렇듯 섭섭해하니 그 비방이 무엇이냐고?
우계 탓으로 찌푸린 날씨에 이따금 뿌리는 가랑비도 아랑곳없이 허리까지 와 닿는 치렁치렁한 검은머리를 해풍에 휘날리고 부둣가에 늘어선 「아오자이」 여인들의 임을 보내는 소담한 정에 구릿빛 청룡병사의 손이 감동으로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보내는 정, 아쉬운 정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공산침략의 독시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던 자유 월남을 파국 1보전에서 소생시키는데 큰 몫을 한 막강한 5만 주월 한국군의 선진 1천 여명의 개선 길을 「다낭」 군·관·민들은 하나되어 합장하는 자세로 두고두고 빌었다.
2천 2백 45일만의 1만리 귀국항로가 평안하기를.
선복에 씌어진 「아프셔」의 선명도 선명한 귀국선은 4일 하오「뚜」,「뚜」- 하는 뱃고동소리를 높이 울리며 육중한 선체를 서서히 움직여 「다낭」항을 미끄러지듯 떠났다.
불과 1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1개 연대의 기습공격을 보기 좋게 물리친 저 유명한「차빈등」작전에서, 인천 상륙작전 이래 처음 있은 한·미 합동의 「베리아」반도 상륙작전에서 상승 청룡이 보여준 용맹성은 월남의 흙 속에 월남인의 마음속에 하나의 신화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낭=신상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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