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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철수 작전 이상 없다|귀국 서두르는 제1진…그 현지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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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이공=신상갑 특파원】청룡 5525부대를 주축으로 이를 둘러싼 지원포수. 보급 지원부대를 한데 묶어 완전무결한 하나의 전투 단으로 편성된 철수 제1진 ○○○○명은 일면, 철수작업을 하면서 일면, 철수의 허점을 노리는 적의 침투에 대비한 탐색 매복작전에 조금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한미합동 재물조사단은 제1진이 귀국 때 갖고 가는 각종 장비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미국 측 조사반은 주 월남 미군사령부 잉여물자처리단장이 반장으로, 우리측에선 주 월남 한국군사령부 병기참모가 반장이 됐다.
한, 미 합의 내용에 따라 단검 한 자루 물통 한 개에서 야포와 같은 중장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장부를 대조해 나가는 전자계산기적 치밀한 조사가 진행됐다. 검인이 찍힌 박스는 뚜껑에 못질을 했다. 청룡이 가져갈 수 있는 장비는 현재 사용 중에 있는 것의 대부분이며, 극소수 품목만이 미군 측에 반품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대인「레이다」, 미진 탐지기 같은 신형무기는 협정에 따라 미군에 반납해야 하는데 이는 한국 측으로 봐서는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민들의 반응은 착잡>
주민들의 반응은 착잡했다. 지각 있고「베트콩」의 야만행위를 몸소 겪고「따이한」의 보호의 고마움을 깨달은 대다수의 주민들은 청룡의 철수를 몹시 섭섭해하며 한편에서는 불안에 떨고 있다.
떠나가는 청룡의 진지에 들어올 월남 군이 피란 민들의 신변 재산보호에 역점을 둘 것으로 기대되지만,「베트콩」만행을 피부로 겪은 이들인지라 청룡이 떠나면「베트콩」의 보복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비참하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피란 민촌 뿐이 아니다.
「쾅남」성도 「호이안」시의 시장 상인, 중부 월남「가톨릭」총 본산이며「티우」월남 대통령에게 영세를 베풀어준 바 있는「레어·하오」신부 (45)가 맡고 있는「자퀴」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사이공」이나「다낭」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서두르고 있다는 얘기.
지난 5월31일「티우」정부는「자퀴」성당에서 동남아「가톨릭」주교회의를 개최하려다 공산군의 공격으로 대회가 유산됐었다.

<신부는 순교할 각오도>
「자퀴」마을은 주민 90%가 천주교 신자로서 반공 열이 높은데 이 마을 주변의 청룡기지가 떠나는 경우 신변이 몹시 위태롭다는 게 그들의 태산 같은 걱정거리.「하오」신부는 자기도 대도시로 이주하고 싶으나 하느님의 소명 때문에 마지막 한 사람의 신자가 남아있는 한 교회를 떠날 수 없다면서 순교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다.
철수병력과 장비의 본국 수송방법에 관해 아직 미 측과 최종합의를 보지 못했으나, 병력의 경우 항공편보다 선박 편을 이용할 가능성이 짙으며 출항지는 ○○항이 유력한 후보 지이다.
개선장병과 같은 때에 수송되는 장비는 별도의 미국 수송선으로 한다는 원칙만 결정되었다.
청룡이 철수한 뒤 남기고 가는 기지에 월남정규군이 들어올 것이냐, 민병 대나 지방 군이 인수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 한, 월간에 합의를 본 바 없으며, 오직「람」장군의 권한에 속한다.
월남정부는 한 미군의 철군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군사적 공백을 메울 방책을 세우고 있다고 들린다.
정규사단이 신설된다면 어쩌면 청룡 자리에는 월남 정규군이 진주할 지도 모른다.

<떠난 후에도 지원 다짐>
주민들은 이왕이면 강력한 정규군이 청룡 기지를 대신 메워주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있으나 어떻게 될지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룡 ○○대대장에겐 한가지 절실한 소망이 있다. 이 부대에선 10명의 부대 주변 어린이들에게 장학금 제도를 실시해 왔다.
전란에 혈육을 잃은 이들의 향학의 꿈을 키우는 데 이 장학금은 큰 구실을 했다. 부 대원이 아껴먹다 남은 C「레이션」이며 K「레이션」이 학생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학교장 사친회서 추천해온 학생 10명중 6명은 중학생, 나머지 4명은 국민교생들.
그 중에서도 L대대장은 전사한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똑똑한 한 소년에게 사랑을 쏟았다.
꾸부정하고 주름 투성이인 이 할아버지의 교육열은 대단했으며 학비를 전해주는 대대장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감은 정신은 청룡장병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이 순박한 사람들에게 어서 평화가 찾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귀국 후에도 계속 학비를 보내주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대대장은 다짐했다.
청룡이 주둔하고 있는 곳의 지형은 늪지대·하천·모래밭·천연동굴이 많다.
사람의 키를 넘는 열대 선인장과 풍요한 문주란이 남국의 정열을 마음껏 발산하기도 한다. 우거진 대나무 숲과 흘러 넘치는 강물은 마치「타잔」영화에 나오는「아프리카」를 연상케 한다.
한 머리에 벼 타작소리가 높은데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묘 판은 3모작·4모작을 가능케 하는 자연의 은총을 노래부르고 있다.
전쟁만 없으면 이보다 더 살기 좋은 데가 없는 삶의 낙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무수한 철조망 「클레이모」「부비·트랩」은 낙원동산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청룡 자리에 월남정규군>
청룡 보호 권에 있는 주민은 약 20만, 면적은 3백50평방m, 부근에는 월남 제2사단이 주둔해 있으며 적 세력은 약 9백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 부지기수. 여기에 월남전의 수수께끼가 있다.
1백명의「베트콩」을 죽이면 얼마 안되어 그 수만큼 보충된다.「베트콩」은 마을 주민을 사정없이 납치, 수를 채우는 것이다.
최근 청룡 ○○중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서 좀 떨어진 어느 마을에 12세에서 15세짜리 남녀 어린이 30명이 무더기로「베트콩」에 납치됐다.
이 마을은「베트콩」가족이 50%나 되는 적성도가 높은 마을로 악명이 높다. 이중 여자아이를 잡아가는 목적은「베트콩」으로 만들며 아울러 남자「베트콩」의 생리적 욕구를 채워주려는 이원적인 것.
납치된 지 한달 뒤 13세의 한 여자아이가 국부가 망가진 채 폐인이 되어 귀가했다. 성에 굶주린「베트콩」의 제물이 된 것이 뻔했다.
주민들은 화가 왈칵 났다.「데모」를 했다.『「베트콩」이여! 피 없는 어린이를 납치하지 말라. 어서 집으로 돌려보내라.』주민들은 부르짖었으나 허공의 메아리였다.
청룡 지역을 포함한 월남 제1군관 구에는 월남군 제1사단·제2사단·제1특별 여단이 포진하고 있다.
미군은 제24군단 휘하 제101공수사단이 있을 뿐 제23사단은 해체되었다.
제101사단 철수도 멀지않아 본격화할 것이므로 제24군단은 껍데기만 남게 될 듯. 호지명「루트」를 통한 중요 침투로가 이곳에 있으며 비무장지대가 가까워 제1군관 구는 월남 4개 군관구 중 가장 중요한 곳.
월남정부가 이 지역에 제3사단을 창설할 움직임을 활발히 보이고있는 이유도 알고 보면 여기 있다.
게다가「람」장군이 대들보같이 믿고 있던 청룡마저 빠져 버리니 그들의 실망은 크고도 남는다. 「람」장군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청룡 철수를 내년 후로 연기해 주도록 노력했으나, 국가간 결정이라 그의 의도는 꺾였다.

<환송회 자청 부락 많아> 청룡 주변 부락에서는 떠나가는 청룡을 위해 연도에서 또는 부대단위로 대대적인 환송을 해주겠다고 자청하고 있으며 어떤 촌장은 철수일자를 알려달라고 조르고 있어 청룡은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하나 청룡 당국은 주민들의 뜻은 고마우나 「베트콩」이 환송대열에 침투할 우려도 있어 보안상의 이유로 이를 완곡히 거절하느라 고역을 겪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이후부터 일체 본국으로부터 교체병력이 오지 않고 있어 월남 복무기간이 가장 짧은 군인은 불과 3개월도 안되어 월남을 알기가 바쁘게 떠나가야 하는 일말의 아쉬움도 있다.
청룡 철수는「다낭」등지에 살고있는 한국 교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1천3백∼1천4백명의 기술자들이 대부분인 한국 교포들 간에는 불안한 공기가 지배적. 이 중 상당수는 조기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
「다낭」한국영사관분관 경비도 큰 문제. 현재 1개 분대의 청룡 병력이 경비에 임하고 있는데 이들이 간 후의 대책은 미정.
주월군 사령부에서는 신속한 조치가 필요할 듯. 책장·의자·집기 등 장병의 손때가 묻은 비품은 규정상 가져가게 되어 있으나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월남 측에 물려주고 갈 것 같다.
청룡은 월남 제2의 도시「다낭」에『얼룩무늬 「따이한」의 전적비』를 건립중이다. 철수를 기념하는 이 탑 꼭대기에는 전자시계 장치를 할 예정.
해병대 사령부는 월남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가족과 전상자들을 위한 새마을계획을 진해와 포항에 추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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