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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계약 아니면 지명 입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년간 정부가 발주한 각종 시설 공사 계약의 대부분이 수의 계약이 아니면 지명 경쟁 입찰에 의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완성된 공사가 심지어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나기 전에도 벌써 부실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등 난맥을 보임으로써 국감에서 큰 문젯거리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9월말 현재 조달청 소관 정부 시설 공사 계약 총액은 43억원에 달하는데, 이중 일반경쟁 입찰에 붙여진 것은 겨우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97·5%가 수의 계약 (46·7%)과 지명 경쟁 입찰 (50·8%)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 나라 관급 공사가 이처럼 일반 공개 입찰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수의 계약 또는 지명경쟁 입찰 방식에 의해 발주되고 있음은 이미 상식화한 일이며, 또 거기엔 그럴만한 명분이 전혀 없지도 않다. 그렇지만 이처럼 전적으로 예외가 원칙을 도착하는 사태가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정치 자금의 염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난의 여지를 남기는 것 일뿐 아니라, 건실한 국가 재정 운영과 투자 효과 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나라 건설 행정의 암적 고질이 되고 있다.
재정법에 명시된 일반 경쟁 입찰 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종래 이러한 수의·지명 경쟁방식을 합리화해 온 명분이란 언제나 『시설 능력을 갖춘 큰 업자에게 정부 공사를 발주하는 편이 도리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과거의 실적을 기준으로 한 도급제를 적용, 정부 공사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발주한 대규모 관급 공사의 부실화가 날로 늘어나고 있음은 그 명분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 공사 발주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잡음과 독직 행위의 배경과도 유관한 것인바, 이점은 조치한다하더라도 일반 경쟁 입찰에 붙여진, 대다수 정부 공사에 있어서조차 비교적 소수의 업자만이 공공연한 담합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근본적인 원인 규명이 있어야할 것이다.
비근한 실례로서 우리는 지금까지 완성된 고속도로가 거의 전적으로 몇몇 특정 업자에게 지명 입찰돼 왔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한 공사가 처음부터 재정 면의 제약과 무리한 공정 기간 설정으로 준공 직후부터 노면에 흠집이 생겨, 매년 수 10억원씩의 보수 공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게된 사례를 상기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의 명분이야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수의 계약과 지명 입찰 방식이 예산의 낭비라는데 그치지 않고, 공공 설비의 이용도를 낮추고, 국민의 생명의 안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중대한 경제·사회 문제임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끝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현재 재무부가 관장하고 있는 각 부처별 공사의 계약 협의권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행사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것은 재무부의 실무진자체가 매일처럼 발주되고 있는 수많은 정부 공사의 내용을 치밀하게 「체크」할 수 있을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만큼 기술적 능력을 못 가진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재무부의 계약 협의권은 행정상 또 하나의 형식적 번잡성을 가중케 하고 있을 뿐, 사실상 아무런 제약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각 부·처는 도리어 이것을 기화로 해서 수의 계약·지명 경쟁 입찰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조차 없지 않다.
이번 국정 감사에서의 지적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정부는 재정 운영의 효율 제고와 공사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이제 현재와 같은 방만하고 부정이 싹트기 쉬운 계약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사해야할 것임은 물론, 이와 아울러 그 운영 방식을 쇄신하는데 긴급한 손을 써야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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