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의 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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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세계 영화사에 밀려든 이상저류는 한때 가장 유망한 산업 가운데 하나로 촉망받던 영화산업을 급전직하로 몰아 넣었다. 미국의 영화관객이 주 8천만명에서 1천8백만명으로 줄어들고 「할리우드」대 「스타」들의 별장지인 「비벌리·힐즈」에서 배우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MGM의 유서 깊은 촬영소가 경영난 때문에 헐리게 되고…하는 외국의 경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 이상저류는 우리 나라 영화계도 혹독하게 강타했다.
몇 몇 「메이저·컴퍼니」가 도산직전의 위기에 봉착했는가 하면 불과 20개 정도 밖에 안되는 제작사의 대부분은 개점휴업상태에서 허덕이고있다.
어떤 경우에도 영화예술은 존재해야한다는 영류인들의 열망과는 달리영화산업은 계속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황속에서 영화계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그 암중환삭 현장을 둘러본다.
금년에 들어서면서 정부는 사양길에 접어든 영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반관반민적 체재인 영화진흥조합을 설립했다. 거창한 사업들을 내걸고 영화계의 기대 속에 출범한 영화진흥조합은 실제로 우수영화에 제작비를 융자하는 등 창립이래 10개월 동안 꽤 부산한 움직임을 보여왔으나 영화진흥조합이 발족으로 영화계 사정이 얼만큼 나아졌느냐는데 대해서는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회의를 나타내고있다.
우수영화의제작실 융자, 우수영화보상 등에 「스캔들」이 뒤따르더니 내분까지 겹쳐 빈축을 받기도 했다. 또한 조합이 각 영화단체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개인에게 지급됨으로써 횡령사건을 유발시키기까지 했다.
영화진흥조합자체의 문제는 차지하고라도 금년은 당국의 전례 없는 배려가 있었지만 실적으로 본 영화계는 부진의 도를 더했을 따름이었다.
70년 한해동안 개봉된 방화는 모두 2백24편인데 비해 금년은 불과 1백50편 내외가 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양보다는 질이 문제라 하지만 금년 개봉편수의 약 절반 가량이 2류 개봉관 내지 지방에서 개봉된 것을 감안한다면 질적으로도 답보 내지 후퇴한 느낌을 주고있다.
또한 70년 상반기 서울시내 영화관람자 수는 약3천5백만명이었는데 금년 상반기는 약 3천2백만명으로서 약3백만명이 감소되었으며 감소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극장연합회측의 이야기다. 3백만명의 관객감소는 입장수입 1억5천만원 정도의 감소를 뜻하는 것이며 금년은 작년보다 전국적으로 약5억원 이상의 입장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현상은 금년도에 제작 신고된 영화가 1백14편인데 이 가운데 검열을 거쳐 이미 개봉되었거나 개봉예정인 영화는 불과 76편이라는 점이다. 이 숫자는 작년보다 훨씬 줄어든 것인데, 말하자면 제작신고 혹은 「크랭크·인」만 해놓고 주춤한 상태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 제작이 진행중인 1백20여편(작년도 이월분 포함)의 영화 가운데 반 이상의 촬영을 끝낸 작품이 고작 18편뿐인 것은 영화업계가 얼마나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는가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TV 등 「레저·붐」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영화관객의 감소 현상은 무엇보다 양질의 영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질과 관련된 문제는 「시나리오」연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연기자 문제는 꽤 큰 비중을 갖는다. 「좋은 연기자」란 얼마나 많은 영화에 출연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연기를 남겼느냐는 데에 있다.
좋은 연기자의 연기도 여러 차례 보면 싫증이 나게 마련인데 지난 5, 6년 동안 우리 나라의 영화는 불과 열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몇몇 연기자들에 의해 좌우돼왔다.
60년대 후반기영화가 제법풍요를 구가했을 때 신성일 최무룡 김진규 등 남자배우들과 김지미 윤정희 문희 남정임 등 여자배우들은 한꺼번에 30편∼40편의 겹치기 출연으로 맹위를 떨쳤다. 최근 남정임 문희의 은퇴 신성일 등 몇몇 배우들의 제작·감독에의 전향으로 양상은 다소 달라졌지만 겹치기 증세는 여전하여 박노식 장동휘 등이 이른바 「액션·스타」와 김지미 최무룡 남궁원 등 「데뷔」가 10년 내외인 노장배우들은 최소 20편(대부분이 제자리 걸음이지만)의 영화출연으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윤정희양이 『무녀도』 주역싸움의 후유증으로 6개월 정권처분을 받아 이른바, 문희 윤정희 남정임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점이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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