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하다 5년 멈춘 6자회담 … 왕이를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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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8년 12월 이후 5년째 중단돼온 북핵 관련 6자회담의 재개를 타진하는 움직임들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우선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4일부터 평양을 방문 중이다. 지난 8월 말에 이어 두 달여 만의 전격 방북이다. 앞서 그는 지난달 27일부터 2박3일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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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중국 측은 “회담을 일단 재개하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했고, 미국 측은 “회담 재개가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목표가 분명하게 달성될 수 있어야 회담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워싱턴의 소식통이 전했다. 말하자면 중국은 ‘선(先) 6자회담 재개, 후(後) 비핵화’ 논의를 주장했고 미국은 ‘선(先) 비핵화 선언과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 후(後) 6자회담 재개’ 카드로 맞섰다는 것이다. 우 대표가 미국 방문을 마치자마자 바로 북한으로 달려가자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북한에 전달하고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때맞춰 6자회담 한국 대표인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워싱턴을 방문 중이다. 조 본부장은 지난 4일 데이비스 대표를 만난 뒤 한국 특파원들에게 “6자회담 당사국 간 협의가 활발한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서로의 생각을 세부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같고 일관돼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데이비스 대표도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토론이 계속되길 희망한다”고 말해 조만간 베이징을 방문할 것임을 시사했다. 조 본부장 역시 미·일과 협의를 한 뒤 곧 중국을 방문해 우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6자회담 재개 쪽에 드라이브를 걸고 일련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중국, 특히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란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왕이 이니셔티브’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왕 부장은 2003년 6자회담 출범 당시 외교부 부부장(차관)으로서 6자회담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월 시진핑(習近平) 정부 출범으로 그가 중국 외교 책임자가 되면서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구체화됐다는 분석이다.

왕 부장은 지난 9월 워싱턴을 방문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동북아 평화·안정을 지키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공동 이익”이라면서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중국의 노력이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우다웨이 수석대표가 평양에서 어떤 해법을 들고오는지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다소 긍정적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중국이 아주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이 북·미 2·29합의 때 약속한 핵과 미사일 실험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입북 허용 등 세 가지 조치를 한다면 6자회담이 재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우리 정부가 중국과 협력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문턱을 낮추도록 해야 6자회담이 재개되고 남북 관계도 풀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제재와 압박을 가했으나 장기간 대화를 하지 않고 북핵을 계속 방치해도 부담이 된다”면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담은 성의 있는 조치를 해오면 먼저 비공식적인 6자 수석회담을 열어 북한의 진의를 확인한 뒤 단계적으로 본 회담을 여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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