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계속 금융가|「2차 인사파동」의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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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6일자로 단행된 11개 은행비서실장 및 서무부장대기발령조치가 은행장실 경비수사결과에 대한 문책이라면 28일자 10개 은행(11개 은행 중 산은제외)의 여신담당자들에 대한 대폭적인 대기발령은 22, 23일 이틀동안 사정담당특별보좌관실이 실시했던 「커미션」거래 및 대출부정특별조사결과에 대한 뒤처리라고 볼 수 있다.
금융가에는 이번 인사개편이 재무부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있으나 사실은 은행장들이 재무부양해아래 자위책을 강구했다는 얘기다.
발단을 모 은행장이 『이렇게 가다간 업무가 공백상태에 빠질 뿐 아니라 은행들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겠다』는 의견을 털어놓고 『차라리 은행이 자발적으로 인사개편을 단행,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해보자』고 민영훈 은행감독원장에게 제의한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제의를 받은 민 은행감독원장은 각 은행장들의 의견을 물어 27일 아침 「뉴·코리아·호텔」에서 은행장들과 회합, 의견을 조정한 다음 오후엔 이 사실을 김원기 재무부의 공식적인 양해를 얻었다.
남 재무부장관이 은행장들의 움직임을 안 것은 26일 하오.
남 장관은 이 소식을 듣고 김 차관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김 차관이 『스스로 잘해보겠다는 것이니까 두고 보는 중』이라고 말해 비로소 이러한 움직임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28일을 「D데이」로 해서 단행된 금융계인사쇄신은 28일 하오 문상철 조흥은행장이 5개 시은대표로 조치결과를 재무부에 보고했으며 이 보고를 받은 김 차관은 조치결과를 갖고 청와대 사정담당보좌관실을 찾아가 『은행들이 자진해서 수술을 가했으니 더 확대하지는 말자』고 협의, 은행에 대한 조사나 조치는 일단 매듭짓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보좌관실과 산하 기관인 금융계 틈에 낀 재무부는 급변하는 움직임에 실무진들이 넋을 잃을 정도였고 이른바 감독부처로서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1개 은행 비서실장 및 상무부장 대기발령-행장 3명 경질-대기발령 해제 등으로 이어진 용두사미격의 인사가 일단 마감 된데다 26일 상오만 해도 남 재무가 직접 『은행인사는 일단 매듭지어 졌다. 더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어 사정담당관실과 은행사이에 나타난 사태진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을 밝혀준다.
더구나 실무자 급에선 「커미션」거래, 대출부정 등의 수사가 시작된 다음날에야 신문보도를 보고 사실을 확인하는 등 소동을 피웠고 담당과장까지도 이번 인사쇄신이 신문에 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10·28금융계인사쇄신」의 핵은 시은의 심사담당 상무와 5개 국책은행(외환·신탁·주택·기은·국민) 여신담당 이사 등 10명의 임원관리업무가 교체됐고 시은에서 20명, 5개 국책 은행에서 10명의 부·지점장들이 대기발령 된 것.
이를 핵으로 연쇄적 인사이동으로 파급되어 전례 없는 대규모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다.
각 은행이 공동보조를 취하는 바람에 응징적 성격을 지닌 인사조치는 시은 각 5명(상무1명 포함), 국책은행 각 3명(이사1명 포함)씩 대상인원이 일치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행내요직에 「메스」가 가해졌다는 점이 중요한 사실로 지적되고있다.
시은의 경우 본점영업부장과 요지지점 4명이고 국책은행도 요지지점장 2명씩인데 명분은 「커미션」거래가 두드러지게 많은 점포의 책임자 문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본점영업부장이나 요지지점장이 행내 세력 뿐 아니라 은행이외의 권력층과 상당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점과 실제 지난번 검찰의 「커미션」수사 때 문제가 됐던 C은행의 남대문지점장이 이번에 대기 발령된 사실 등은 정계기상도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인사쇄신과 함께 「커미션」거래 등을 예방하기 위해 각 지점장들로부터 서약서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며칠 전에 각 은행장들이 내년 3월말까지 은행업무를 정상화시키겠다는 시한부 각서를 낸데 이어 이제 일선지점장들이 행장에게 서약서를 냄으로써 「각서에 의한 금융정상화」(?)가 시동된 것이다.
이번 인사쇄신이 은행장들의 자발적인 결정에서 이루어졌든 감독부처인 재무부의 권고로 단행되었든 간에 그 효과 면에서 은행스스로의 자위책이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우선은 문책으로 사정당국의 감사결과에 대한 마무리를 했고 각서제출로 책임체제를 다짐해 놓은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그러나 「커미션」거래만 하더라도 은행고위층들의 묵인 하에 이루어져 왔고 거의 모든 점포에 일반화돼온 사실인데 문책범위는 하부에만 집중됨으로써 비서실장 및 주무부장 대기발령의 전철을 다시 한번 밟은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즉 『큰일을 위에서 저질러놓고 하부에만 책임을 묻는 격』이 됨으로써 고위책임자들의 자위조치가 된 셈이라는 논평도 나오고있다.
한편 금융정상화조치와 함께 일단 매듭지어진 인사쇄신이 몰고 올 여파로서 다음단계엔 은행과 거래선간의 상당한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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